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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대입 수험생 64만여 명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받는 날이다. 길게 보면 초중고 12년, 짧게는 3년 이상의 학업성취 결과가 한 장의 성적표에 담기게 된다. 우리의 미래를 걸머질 어린 학생들이 난생 처음으로 전국적으로‘줄세우기’를 당하는 순간이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란다’라며 등을 두드려 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만 않다. 한 두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밀려 학교가 달라지고, 전공학과가 달라져 인생의 행로와 삶의 품격이 바뀌는 판에 그런 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 만무하다.

올해 수능은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해 세계지리에 이어 올해도 영어와 생명과학Ⅱ 등 두 과목에서 출제오류 사태가 발생하여 평가원장이 사퇴를 했다. 여기다 난이도 조정 실패 이른바 역대 최고의‘물수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수능무용론’ ‘본고사부활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조용기 수능시험본부장은 “기본적으로 출제과정에서 만점자 비율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일부 영역의 1등급 비율이 4%를 넘는 데 대해서는 동점자가 많아 상위등급을 부여하다 보면 기준비율을 초과하는 경우가 있다”고 반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능은 ‘물수능’이라는 비판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점수분포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과생들이 선택한 수학B 만점자는 무려 4.3%(6630명)로 사상 처음으로 1등급 컷(4%)보다 많았다. 1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로또수능’이란 비판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난해 수학B 1등급 컷이 92점이고 만점자 비율이 0.58%였던 것을 감안하면 차이가 나도 너무 크다.

영어만점자 비율도 3.36%나 돼 물수능으로 평가됐던 2012학년도(2.67%)보다 0.7%포인트 높아졌다. 영어 1등급 컷은 98점으로, 3점짜리 1개만 틀리면 바로 2등급이 된다.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쉬운 영어’를 표방할 때부터 이러한 혼란은 이미 예고돼 온 것이다.

때문에 고득점자, 상위권 학생들의 혼란은 더욱 커지게 됐다. 특히 의대나 공대를 지망하는 고득점자들은 무더기 피해자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 두 문제 실수로 최저등급을 못 맞춰 수시모집에서 탈락하는 수험생들이 속출할 것이고, 정시에도 점수 격차가 좁혀져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수능등급과 백분위를 따져서 영역별 성적의 강약을 파악한 뒤 목표대학의 영역별 반영비율, 학생부 성적의 유불리 등등…어쩌면 지금부터가 더 머리 아프게 고차방정식을 풀어야할 지도 모른다. 예년의 배치표, 진학정보지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된 셈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각 대학별로 실시하는 입시설명회는 인산인해다. 상위권 학생들은 1~2점은커녕 소수점에서 당락이 뒤바뀌어야 하는 현상이 나올 수 있다. 대학 합격선도 대폭 상승할 것으로 입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원점수와 표준점수, 백분위 등 대학이 제시한 영역별 반영비율과 가중치 등이 다르다. 고도의 눈치작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실수하여 등급이 밀린 일부 고득점자들은 이미 대입을 포기하고 재수나 삼수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은 2016학년도 수능은 박 터질 것이라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재수학원들도 재수 선행반을 개강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재수를 선택한 학생들이 늘자 인기학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값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인기지역인 양천구 목동의 경우 지난 한 주 0.36% 오르며 상승세를 이끌었고, 8학군의 상징 강남구 대치동도 0.32% 오르며 강세를 보였다. 전체 평균치인 0.1%를 훨씬 웃돌고 있다.

이래저래 고득점자는 고득점자대로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여야하고, 중상위권자는 평소보다 기대이상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인서울’(서울소재 대학)도 힘든 상황이라 갈피를 못잡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로 교육부가 ‘대학수능 개선위원회’를 만들어 내년 3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지만 개선위에 참가한 면면들이 수능을 주관해온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교육 관련 학회 소속 교수들이 대부분이어서 제대로 된 개선안이 나올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대학수능시험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다가온 한파처럼 어린 학생들의 가슴이 물수능에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전체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부분만을 가르쳐온 것도 모자라 어쭙잖은 수능 따위로 등급을 매기고, 줄을 세워야하는 어른들의 그릇된 행태와 변명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하는지 교육당국과 개선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어떠한 조그마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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