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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한파로 연탄불이 그리운 계절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 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님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읊조리며 조용히 나에게 묻는다. 남들처럼 한 장의 연탄을 안고 살고 있지만 그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을 위해 태우기 급급했다. 지금은 철들고 베풀 나이임에도 혹시나 남이 일궈 놓은 불이 내게로 건너와 뜨겁게 옮겨 붙기를 기다리며 옹색하게 살고 있으니 인정머리없기는 연탄재보다 나을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연말이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과 매번 허공 속에 헛발질만하면서 살고 있는 자신의 변함없는 모습에 자책감에 시달린다. 시간의 바통을 이어받는 새해에는 뭔가 새롭게 시도하고 변해야지하며 새해를 열지만 ‘혼자 발버둥 친다고 뭐 나아질 게 있겠냐’며 이내 체념하고 말게된다.

올해 역시 여느 해처럼 다사다난했다. 지난 4월 초순 윤일병 사망사건이 터지면서 해이해진 군의 기강이 문제되는가 싶더니 곧바로 대한민국은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이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해외로 타전되었다. 유족들의 슬픔은 이어졌고, 이를 쳐다보고 있는 국민들은 자신의 일인양 함께 슬퍼했다.

진상규명을 놓고 유족들은 외롭게 외쳤으며 그로 인해 국회는 공전했고 사회적 분열과 대립이 극으로 치달았다. 국정감사를 위해 다시 문을 연 국회는 무상복지냐 무상보육이냐를 놓고 편가르기를 했다. 와중에 터진 검찰고위간부들의 일탈, 출제오류에 ‘물수능’ 비판까지, 최근엔 청와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사건에 이르기까지…

군대에선 폭력이, 골프장과 학교에선 성희롱과 폭력이, 병원에선 만취상태로 수술하는 의사들이, 권력을 거머쥔 자는 돈 받고 뭐든 눈감아주고, 정치권은 백날 혁신이니, 선진화니 해놓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공기업은 해외자원개발에 엄청난 나랏돈을 쏟아 붓고도 발뺌하기 급급했고, 나라의 안보를 맡은 국방관련 기관은 검은돈과 유착되어 성능미달의 무기를 도입하여 전선에 배치했다.

며칠 전 수원 어디에서는 머리도 없고, 팔다리도 없는 반토막 여자 시신이 산속에서 발견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멀쩡한 사람들을 산속으로 끌고 가 살해한 뒤 장기를 꺼내어 팔아먹는, 가끔 중국에서나 발생했던 사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짓과 불신, 두려움과 불안의 최고점이 뭔지 보여주기나 하듯 우리는 너무나 리얼하게 모자이크처리도 없이 똑똑하게 보며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 웬만해서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리도 모르게 자극적인 것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전체가 집단 면역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나라꼴이 어디 하나 조용한 곳이 없다. 가뜩이나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사건들로 인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탄식과 한숨을 토해낸다. 사회전체가 지긋지긋한 불신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선진국과 신흥경제대국인 중국 사이에 끼어 그동안 잘도 버텨왔지만 내년에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국으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내수경기 장기침체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를 외롭게 이끌어온 수출이 급격한 환율변동성 때문에 휘청거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당연히 국내 주요기업들의 내년 경영 화두는 ‘환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년은 환율 변동성을 점치기가 더욱 어려워 경영계획을 짜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이맘때쯤 새해 각국의 경제와 금융, 글로벌트렌드의 흐름을 전망하는 ‘세계경제 대전망’을 내놓는다. 이 주간지는 내년 세계경제를 ‘대충돌’로 요약했다. 미국 중심의 경제성장과 연준의 금리인상, 유로존의 더딘 회복, 중국의 성장률에 대한 우려 등으로 세계 경제가 갈림길에 설 것이며, 모든 분야의 기업들이 쉽지 않은 해를 보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삶이 이처럼 팍팍해진 것은 사회제반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임을 누구나 다 안다. 어느 하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이 없으니 개인인들, 기업인들 누가 지갑을 열 것이며 투자를 할 것인가. 불신풍조는 개인과 가계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신은 기본과 원칙을 무너트리고 생각과 의견들을 충돌시킨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요지경이라 해도 절망이 희망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절망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친다하더라도 적어도 체념은 하지 말아야한다. 체념은 절망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무엇을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의심과 역동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한 도전의식이 없는 한 형편이 나아질 리 만무하다. 경제는 '심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켜져야할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새로 얹은 차가운 연탄에 불을 옮겨 붙도록 오롯이 자신을 태워내는 연탄불의 가치를 사회 각 분야에서 깨우치고 실행에 옮겨지길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솔선하여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신뢰구축에 적극 나서야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있는 사람이 더한다’가 아니라 ‘있는 사람이 다르다’는 인식이 퍼질 때 아픈 과거가 치유되고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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