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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히브리인들은 체벌을 바라보는 관점이 현대의 부모들과 달랐던 것같다. 잠언 13장 24절에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일찍부터) 징계하느니라’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는 말이 나왔다. 잠언에는 이밖에도 부모가 자식 교육을 게을리 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긴다고 경고하는 구절들이 참 많다. 내용은 사랑으로 하되 가혹하리만치 매를 들라는 것이다. 하나 아니면 둘 낳아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우는 요즘 부모들에게는 난리가 날 일이다.

우리는 일찍이 맹자(孟子)의 어머니와 한석봉(韓石峯)의 어머니, 또 에디슨의 어머니를 잘 알고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이면에는 부모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제대로 된 ‘자식교육’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자식 키우는 것을 우리는 흔히 ‘자식농사’라고 한다. 자녀들이 잘된 집을 가리켜 “그 친구 자식농사 하나는 잘 지었다”라고 말한다. 자식농사처럼 어려운 것도 드물다. 부모 마음대로 잘 안되는 것이 자식농사다. '부모 노릇'이 그만큼 힘들다는 얘길 것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자식농사’에는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식 잘 키워 부모가 호강했다는 얘기보다 자식을 잘못 키워 패가망신하는 이야기가 우리의 귀를 더욱 솔깃하게 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실제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여름,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군대에 간 맏아들 때문에 한동안 곤혹을 치렀다. 아들이 후임병에게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남 지사는 “애비 되는 사람으로 자식 잘못 키운 점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 이전엔 정몽준 전 의원의 막내아들이 세월호와 관련해 ‘국민정서가 미개하다’(어머니는 말이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는 엉뚱한 글을 올려 선거운동 중인 아버지의 속을 썩였다.

주변 지인들도 자녀를 해외로 보낸 부모들이 많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학비문제보다 자식이 한국적 정서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혹시 주변 친구들을 잘못 사귀어 술과 마약에 빠지지 않을까도 늘 걱정거리다. 물론 유학을 보낸 아이들이 잘 성장하여 성공한 이야기는 훨씬 많다. 부모 바람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주변의 부러움을 받는 부모들도 허다하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1974년 10월 5일생으로 올해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 역시 미국 유수대학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 대한항공에 입사, 15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평소 그의 거만하고 불손한 태도를 접한 사람들은 ‘오너’라는 신분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고, 누구하나 나서 제동을 걸지 못했다. 그에게는 경쟁자도 없었고, 오로지 ‘오너’라는 신분 때문에 특급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5일 뉴욕 JFK공항 대한항공 기내 일등석에서 한 언행이 구설수에 올라 생애 최대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견과류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품은 그는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는 폭언을 했고, 격분한 나머지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땅콩리턴, 땅콩부사장’ 등으로 희화화되면서 초스피드로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사건은 진정되기는 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핵심은 바로 그가 ‘오너’였다는 점이다. 그냥 ‘갑질’이 아니라 ‘슈퍼갑질’이라 흥미를 돋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힘없고 애꿎은 승무원만 나무라고 ‘회장님의 딸’만을 감싸려는 항공사측의 어설픈 발뺌과 대응이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이 됐다. 회유와 강요, 뒤늦은 사과와 해명 등 사측의 뒷북대응은 회사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사건의 진위와 위법성 여부는 결국 검찰수사와 사법적 판단으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일부 재벌 오너 3세들이 시대착오적인 봉건적 사고방식과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의 잘못된 품성은 개인의 위신과 체면을 떠나 기업이미지는 물론 나라의 품격마저 훼손시키고 있는 점은 어떻게 봐야할까.

더욱이 해외에서 대한항공과 한국인을 조롱하는 듯한 보도와 패러디를 보며 우리 국민들이 느낀 수치심은 또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지친 여행길에 우리나라 국적기, 특히 대한항공의 태극마크를 보면 왠지 가슴 뿌듯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는 ‘땅콩 코리언’으로 조롱받을까 벌써부터 우려스럽다.

기업을 개인의 구멍가게처럼 착각하고, 직원들을 종 부리듯 하는 특권의식을 가진 재벌가 3~4세는 기업과 사회의 위험요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을 강제적으로 추방할 수도, 법과 제도적으로 인성교육을 강제할 수도 없는 것이 딜레마다. 다만 이번 땅콩리턴 파문으로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족벌경영의 폐해가 부각되고 이를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노력이 행동으로 옮겨지길 기대할 뿐이다.

문제는 대한항공에만 땅콩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천개, 수만개의 땅콩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원리원칙이 아니라 ‘까라면 까야’하는 불합리가 판을 치고, 어처구니 없는 ‘갑질’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참고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수록 ‘갑질’의 횡포는 더욱 거세진다.

다시 사건 당시로 되돌아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해본다. 조현아 부사장은 밤늦은 시각에 수고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자신을 위해 마련해놓은 1등석을 만류하고 이코노미 그것도 고객들이 싫어하는 화장실 옆 좌석의 손님을 1등석으로 앉히게 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돌아왔다면 어땠을까. 승객과 승무원, 승무원과 객실본부장의 소통이 이보다 더 멋질 수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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