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 해산명령…소속 의원 5명도 의원직 상실

[투데이코리아=박기호 기자] 통합진보당이 19일 결국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통합진보당에 대해 재판관 8대1의 의결로 해산을 명령했다. 정당이 해산명령을 받은 것은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헌재는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에 대해서도 의원직 상실 판결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은 5명으로 김미희·오병윤·이상규 의원은 지역구, 김재연·이석기 의원은 비례대표다.

이례적으로 TV로 생중계된 헌재 결정
재판관 8대1 의결…김이수 재판관만 반대 의견

이례적으로 헌재 결정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이날 오전 10시 9명의 재판관의 입정이 시작됐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주문에 앞서 선고 배경 등을 설명했다. 박 소장은 그간의 절차 진행에 대해 말했다. 박 소장은 “헌재는 이 사건에서 두 차례 변론준비기일과 18회에 걸친 변론기일에 17만5000여쪽 증인 12명의 증언과 참고인 등 제3, 제4 고민 거듭하면서 절차 진행했다.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적 기본질서 밝히고 정당 한계 중차대한 생각과 판단에서 늘 공경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무불경 자세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디 오늘 이 결정이 우리 사회 소모적 이념 논쟁 종식시키고 대한민국 미래 희망 만들어 가는 계기 되기를 바라며 선고한다”고 밝혔다.

박 소장은 이어 “사건은 피청구인의 목적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 선고 여부 국회의원 상실 여부에 관한 것”이라며 “피청구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민노당 목적 활동은 관련성 인정되는 한에서 참고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결정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법무부의 청구는 적법하며 정당심판의 제도적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결정에 찬성한 의견을 설명했다.

또한 “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한 것이 인정되며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대남전략과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관 반대의견에 대해선 “진보당의 광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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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장은 주문에서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해산을 선고했다. 해산결정의 주 이유로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고 있으며 대남혁명전략과 같다”는 점 등을 들었다. 또한 국회의원직 상실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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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청구를 받아들인 재판관은 박한철·안창호·이정미·강일원·이진성·김창종·조용호·서기석 등 8명이었고 반대 의견을 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 1명뿐이었다.

창당 3년 13일만에 문닫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켜” 반발

헌재의 이 같은 결정으로 지난 2011년 12월 6일 창당했던 통합진보당은 창당한지 3년 13일, 일수로는 1109일 만에 문을 닫게 됐다.

헌재의 결정에 통합진보당은 즉각 반발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켰다”면서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헌법재판소가 허구와 상상을 동원한 판결로 스스로 전체주의의 빗장을 열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또 “오늘 이후 자주 민주, 평등, 평화통일의 강령도, 노동자, 농민, 민중의 정치도 금지되고 말았다”면서 “말할 자유, 모일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암흑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저의 마지막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면서 “진보정치 15년의 결실 진보당을 독재정권에 빼앗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오늘 저는 패배했다”며 “역사의 후퇴를 막지 못한 죄, 저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울먹였다.

이 대표는 이어 “오늘 정권은 진보당을 해산시켰고 저희의 손발을 묶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저희 마음 속에 키워온 진보정치의 꿈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늘 정권은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금지시켰지만, 보다 더 나은 민중과 갈라져 아픈 한반도에 대한 사랑마저 금지시킬 수는 없다”면서 “이 꿈과 사랑을 없앨 수 없기에 어떤 정권도 진보정치를 막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진보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선관위, 통진당 정당 등록 말소 및 모든 자산 국고 환수 조치
소속 의원 5명, 의원직 상실…내년 4월 29일 보궐선거

통합진보당의 반발에도 불구, 헌재의 결정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해산됐고 소속 의원들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장 선거관리위원회는 헌재의 결정 통지가 접수되는 즉시 통진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한 뒤 관보에 게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고보조금 수입계좌와 정치자금 지출계좌를 압류하고 모든 자산을 동결한 뒤 잔여 재산의 국고 환수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통진당의 재산 규모는 13억5천965만원이었다. 국고보조금은 2012년 25억6천329만원, 2013년 27억3천829만원, 2014년 27억8천490억원 등 최근 3년간 80억8천649만원이 지급됐으며, 같은 기간 지급된 선거보조금, 여성추천보조금까지 합치면 통진당은 지난 3년간 총 163억887만원을 국고로 지원받았다. 기탁금으로도 최근 3년간 14억4천137만원을 지급받았다.

국회사무처 역시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서가 국회에 송달되는 대로 통합진보당에 제공된 사무실과 각종 예산상의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정당 지원차원에서 통합진보당에 제공된 사무실은 국회의사당 내 1개실(원내대표실 및 원내행정실), 의원회관 내 1개실(정책실) 등 2개실이 제공되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청사관련 규정에 따라 7일 이내에 비워줄 것을 통보하고, 예산상의 지원은 즉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이 결정됨에 따라, 국회의장은 궐원통지서를 대통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지할 예정이다.

또한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이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이들 중 지역구 의원 3명의 선거구에서는 내년 4월 29일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통합진보당의 지역구 의원은 김미희(경기 성남중원구), 이상규(서울 관악구을), 오병윤(광주 서구을) 의원 3명이다. 현재 수감 중인 이석기 의원과 김재연 의원 등 비례대표 2명의 의원직 상실과 관련해서는 2명의 의석 승계 없이 내후년 20대 총선 때까지 의원정수가 298명으로 유지된다. 정당이 해산돼 의석 승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통합진보당에는 광역의원 3명(비례대표), 기초의원 34명(지역구 31명, 비례대표 3명) 등 지방의원 총 37명도 속해 있다. 이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는 헌재 판결문을 검토한 뒤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통합진보당은 기존 강령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대체 정당을 창당하지 못한다. 한번 해산되면 ‘통합진보당’이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다. 선관위에 등록되지 않은 대체 조직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새누리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새정치연합 “헌재 결정 무겁게 받아들여…정당 자유 훼손 우려”

이번 판결과 관련, 보수·진보 진영의 갈등이 첨예한 만큼 정치권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은 환영의 입장을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 브리핑에서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면서 “정의의 승리를 안겨다준 헌재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대한민국이 종북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북한폭력혁명을 추종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헌법정신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윤영석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가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정당의 설립과 활동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보장된다”며 “통합진보당은 북한의 3대 세습이나 핵개발,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외치며 북한을 옹호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합진보당의 활동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이라며 “구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건전한 진보정당으로 재탄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을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민주주의의 기초인 정당의 자유가 훼손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선고에 앞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헌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사법의 정치화도 문제지만 정치의 사법화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의원은 헌재 판결 직후 본인의 SNS 계정을 통해 “정부가 강제로 정당해산 심판청구를 하고 헌재가 해산결정을 한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진보당의 정치노선에 동의하지 않지만 진보당 해산이라는 헌재의 결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정치적 반대자라고 해서 그들의 말할권리, 정당활동의 자유까지 빼앗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폭압”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정당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역사리턴”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당은 자율적인 정치적 결사체로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며 “국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변인은 “민주주의 시대에 정당에 대한 심판은 정부의 판단이나 사법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면서 “이것이 헌법 정신이고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긴 판결로 6월 항쟁을 통해 탄생한 헌재 역사 중 가장 치욕적인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정부의 논리는 민주화 운동을 색깔론과 반국가 활동으로 몰아 탄압했던 독재정부 시절 억지주장과 다르지 않다”면서 “헌재의 다수 의견은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강령과 당 활동 전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부세력의 행위를 그 해산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당은 오늘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무너진 날로 기억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혼란을 부추기는 최악의 통치는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무부 해산심판 청구 409일만에 이뤄진 결정
증거자료만 17만 쪽…복사비만 수억 원

한편, 이번 헌재 결정은 법무부가 해산심판을 청구한지 409일 만에 이뤄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5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한 뒤 유럽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전자 결재를 받아 심판을 청구했다. 법무부는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 등을 함께 청구하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와 진보당은 18차례 공개변론을 통해 약 17만쪽에 달하는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24일 첫 준비기일 이후 매달 두 차례씩 공개변론을 진행하면서 김영환 전 민혁당 총책 등 12명의 증인과 송기춘 전북대 교수 등 6명의 참고인을 신문했다.

그간 법무부는 2907건, 진보당은 908건의 서면 증거를 냈다. A4 용지 16만7천쪽에 해당하는 기록은 종이 무게만 888㎏, 쌓으면 높이 18m에 달한다. 복사비만 수억원이 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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