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정치 이끈 與野, 대화정치 관행으로 굳어져야

[투데이코리아=이정우 기자] 2014년 12월 국회. 과거와는 다른 느긋한 모습이다. 물론, 12월 임시국회가 한동안 파행이 지속되기도 했지만 금세 봉합이 됐다.

국회는 해마다 연말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두고 여야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었다. 국회 로텐더홀에선 여야의 물리적인 대치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르다. 여야는 일찌감치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에 여야의 상생정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새해 예산안이 12년 만에 기한 내에 통과됐다. 물론, 국회선진화법의 영향도 있지만 여야 원내지도부의 상생정치가 그 바탕이 됐다는 것에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 중심에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있다. 이들은 오랜만에 협상하는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보여준 성과는 상당했다. 6개월간 교착 상태였던 세월호 특별법의 합의를 끌어냈고 12년 만에 법정 시한 내 새해 예산안 처리 약속도 지켰다. 게다가 지난 23일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기를 비롯해 부동산 3법 처리, 국회 운영위 소집에도 합의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 23일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 지도부 6명이 만나 머리를 맞댔다. 12월 임시국회 파행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협상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관련, 활동기한이 최소 90일이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당내선 시일에 대해 한 달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기한을 오히려 늘린 것이다. 결국 여야는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특위의 활동기간을 최장 125일로 하기로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무원연금개혁특위의 활동 기간을 못박았다. 빅딜을 이뤄낸 것이다. 즉,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은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여야가 쟁점 현안을 일괄 타결한 뒤 다음날 당 회의에서 여야의 합의를 “여야 모두의 승리”라고 평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여야 관계에 대해선 “일방이 패하고 일방이 승리하면 반드시 후유증이 온다”며 “여야가 서로 윈윈해야 한다”고 했다. 상생의 정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또 소속 의원들을 향해 “본회의장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여야 의원들의 야유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 의원 간에) 야유도 금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원내대표는 “다사다난했던 사건과 정책 이슈 현안이 많았지만 어제 타결과 합의로 금년이 선진정치의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며 “전통이 돼 내년부터는 누가 어떤 자리를 맡더라도 여야가 합의와 양보·타협·존중의 정신으로 간다면 우리 의회가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행정고시를 거친 경찰 출신이다. 경찰에 있을 때부터 추진력과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개각 얘기가 나오면서 국무총리 하마평에 오르는 것과도 이 원내대표의 이 같은 능력과 무관치 않다. 뿐만 아니라 여야 모두로부터 합리성을 인정받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상생정치를 이끌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면서 여야가 계속 충돌만 해왔지만 우 원내대표가 등장한 이후 원만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 원내대표가 등장하면서 합의처리 문화가 야권에 정착돼가고 있다. 여야 대치가 길어지고 있을 때면 우 원내대표는 이 원내대표와 ‘원샷 합의’를 통해 국회를 정상화시키곤 했다.

합의 과정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에선 야당의 경우 강경파의 반발로 합의를 두 번이나 뒤집었지만 우 원내대표 취임 후에는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당 안팎에선 우 원내대표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성격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 원내대표는 늦깎이로 사법시험 32회에 합격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권에 뛰어든 대기만성형이다. 평소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과도하게 나서지도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우 원내대표가 여권과 각을 세워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야당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비리·방위산업비리)국정조사, 비선실세 국정 개입 의혹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각을 세운다고 타협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타협과 견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생정치를 이끌고 있다.

대화를 중시하는 여야 원내대표의 찰떡궁합. 이들은 때로는 당내 반발도 무마시키면서 많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은 거의 매일 전화를 하거나 만나면서 국회 3층 운영위원장실에서 비공식으로 독대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배후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원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협상을 중요시하는 정치인들이다.

김 대표는 다급해진 야당으로부터 전면에 나서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번번이 “협상은 원내대표에게 전권이 있다”며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원내대표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또한 이 원내대표가 강경파 반발에 부딪히고, 본회의가 무산돼 사퇴를 선언했을 때도 앞장서서 이 원내대표의 버팀목이 돼 주기도 했다.

문희상 위원장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문 비대위원장은 강경파의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김 대표와 회동을 통해 협상이 재개될 수 있도록 막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는 문 비대위원장과 김 대표가 각각 과거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서 여야 관계를 초월해 오랜 인연을 이어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한편, 올해 유난히 느긋한 국회를 만들어낸 여야의 상생정치가 관행으로 굳어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올해를 선례로 향후 여야 지도부도 상생과 대화를 통해 아름다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들에게 불신을 받는 정치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의도에선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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