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싸움보다 국민들 가려운데 긁어주는 게 영양가 있다

<정우택 논설위원>

설만 무성한 BBK 주가 조작 사건에 대선 후보들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목을 메고 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누구든지 'BBK 혈투'에 결려들기 만하면 속된말로 '작살'난다는 것이 정치권의 생각이다. 그래서 여당과 야당, 무소속 후보까지 BBK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아예 목숨을 걸고 있다.

'물고 늘어진다'말은 당사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이 주장하는 BBK 내용이 한 마디로 '거짓'이라는 것이고 이회창 후보나 정동영 후보 등은 BBK와 이명박 후보가 분명히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다 아는 얘기다.

문제는 BBK의 돌아가는 판세가 정치권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단판에 결론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경준과 그의 누가, 부인의 행보가 갑자기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관련성을 입증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궁금증만 더해주고 있다.

원래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이 21일 LA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김경준의 부인 이보라씨가 나와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면계약서의 원본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면계약서를 서울로 보내 검찰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면계약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관심을 더 끈 후에 이면계약서를 내놓으려고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당장 내놓는 것보다 시간을 질질 끌다, 혹 후보등록 직전, 또는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때 이면계약서를 제시해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준과 그 가족의 생각이 무엇이든 대선 후보들은 BBK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후보든 이회창 후보든 정동영 후보든 빨리 BBK의 굴레를 벗는 사람이 대선에서 이긴다는 것이다. BBK의 결론이 늦어질 것이 뻔하고, 국민들도 BBK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그래서 BBK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한다. 후보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이명박 후보도 김경준 측으로부터,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지만 떳떳하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검찰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있으면 얼른 제출하고, BBK의 멍애를 벗어야 한다. 설령 BBK의 주가 조작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일로 받아들이고 2천5백만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가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BBK에 매달리는 것 보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만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뭔지, 어려운 점이 뭔지, 바라는 게 뭔지를 알아차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가려운 곳은 긁어주고, 아픈 곳은 싸매 주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게 BBK의 덧을 벗는 일이다.

이회창 후보나 정동영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후보가 BBK에 관련 됐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 곁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승리하는 길이다.

솔직히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 조작에 관련돼 '낙마'하기 만을 기다리다가 실제로 낙마하면 좋겠지만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일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정난다면 다른 후보들은 오히려 치명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BBK를 이용해 역전을 시도했던 그들은 역전은 커녕 되레 '메치기'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은 BBK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책 선거로 승부해야 한다. BBK는 당장 담판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감을 잡아야 한다. 만일 BBK에 매달려 싸움 닭처럼 싸움만 하다보면 나중에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이 아예 BBK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국민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선거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정책 선거 운동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BBK의 실체가 밝혀지면 그 때가서 그걸 또 대선에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론도 없고, 설만 무성한 것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미련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국민들은 싸움을 거는 사람보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아픈 곳을 감싸주는 사람, 힘들 때 짐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우택 논설위원 chungwootae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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