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비슷한 후보 없어 접전, 스릴 맛보기 힘들듯

12월에 치러지는 대선은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맥 빠진 대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 간 경쟁이 치열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고, 당사자들도 긴장감이 넘치는데 이번 대선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후보 등록일인 오는 25일과 26일이 돼야 알겠지만 정치권에서는 대략 15명 이상이 대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가 불발로 끝난데다 강력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 주자들이 늘어났다.

후보 등록 첫날인 25일 출사표를 던진 후보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통합신당의 정동영, 민주당의 이인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민노당의 권영길, 국민중심당 심대평 등이 등록을 했다. 너무 많아 이름을 외우기 힘들 정도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번에 내가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나머지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년에 있을 총선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대선이 국민적 관심을 얻고, 흥행이 되려면 엇비슷한 후보 2~3명이 나와 '혈투'를 해야하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게 아니다. 이명박 후보가 40% 에 육박하고 있어 나머지를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다.

이런 상황이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다. 그렇다보니 스릴이 없다. 단지 몇 %로 이겼느냐, 서울 사람은 누구를 많이 찍었고, 경상도 사람은 누구에게 표를 몰아주었나, 전라도 사람들은 또 어땠나, 충청도는 표는 어디로 많이 갔나 하는 정도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난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투표율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신경전을 벌인 것 같은 맛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에 노무현과 이회창은 아마 오줌이 노랄 정도로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당직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양쪽의 지지자들은 더 했다.

이번에는 그런 스릴을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범여권이 정동영이든 문국현이든 이인제든 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야 강력한 대항마가 생기는데 돌아가는 꼴이 그게 아니다. 단일화는 이미 물 건너 같다고 봐야 한다. 세 사람이 따로따로 나와 뛰어봐야 이명박을 앞서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BBK에 확실하게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그렇다.

이회창 후보도 특별한 돌파구가 없는 한 지지율을 30% 이상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후보에게 '돌발' 악재가 나타나면 어부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등과 손을 잡으면 30%대 진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대선 후보들이야 스릴이 있든 없든, 경쟁이 치열하든 말든 단 한 표라도 더 얻어 승리하면 그게 바로 스릴이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않다. 이왕이면 엇비슷한 후보가 나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관심이 커진다.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들이 '접전'을 벌이는 것은 양쪽의 힘이 팽팽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스릴이 없는데 비해 말싸움이 많을 것이다. 8명이 나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짐은 지금부터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든 상대의 약점을 떠벌려야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정우택 논설위원 chungwootae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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