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사람들은 원래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 법”이라고 했다. 큰 거짓말일 수록 거대한 실체를 정확히 보기 어렵다. 하지만 큰 거짓말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코드'가 맞기 때문에 성장하고 사람들에게서 환영받는다. 그리고 더 이상 코드가 맞지 않게 될 때야 참혹한 현실이 눈 앞에 드러나게 된다.

2007년, 두 건의 거대한 거짓말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한 건은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학력 날조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김경준 전 BBK 대표의 주가 조작 문제다. 신 교수 사건이 예일대 대학원 학력 날조부터 큐레이터 생활, 동국대 교수 임용, 광주 비엔날레 감독 선임 등의 긴 '러닝 타임'을 자랑한다면, 김경준 씨는 99년 BBK 설립부터 2002년 해외 도피, 그리고 긴 범죄인 인도 재판 끝에 금년 초겨울 한국행 결론이라는 쌍벽을 이루는 긴 시간을 자랑한다.

이 두 사건은 주인공들이 갖는 묘한 공통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선 두 사건은 서류 날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 기반 위에서 저질러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몇 가지의 진실을 섞어 전체를 진실로 보이게 상당기간 '페이크'를 쓰는 데 능하다는 점도 유사해 보인다. '스토리텔링'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적 재능을 발휘했다고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보편적인 갑남을녀의 정서나 감정보다 '쿨'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주변의 모든 정황을 자신의 행동에 주저없이 이용할 줄 아는 냉정한 면모를 보인다.

◆논리적으로 들리는,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주장 횡행

신정아 사건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신 씨가 학력 날조 문제가 불거지자 직접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증거를 구하러 간다, 한국에서 나를 공격하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학교에 직접 간다는 소리로 일단 타당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이는 상당한 모순을 갖는 부분이다. 미국 내 외교공관 등의 객관적인 기관을 통해 대리로 서류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 씨도, 대학도, 심지어 수사기관도 이런 '간단한' 방식을 도외시하고, 자신이 직접 증거를 구하러 간다는 '형식논리'에 매몰된 응석을 받아줬다.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태껏 공개가 안 된 중대증거가 있다, 아직까지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공개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고 범여권에서는 마지막 히든카드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이 문서가 정말로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있다면 왜 그 동안 두 사람이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은 문화방송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22일 아침 전화인터뷰를 통해 등장, “그 동안 이명박 씨와 미국에서 민사재판을 한 것은 맞다. '그럼 그 재판 중에 왜 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는가?'라는 점에서 의문을 갖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또 '범죄인인도청구를 한국 법무부가 해 미국연방재판소에서 하는 중에도 왜 공개를 안 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하지만 민사재판과 범죄인 인도 청구 모두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한정돼 있는 것이어서 이명박 씨나 다스와 상관이 없는 문서(이들 이면 계약서)는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법원에 제출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제출하지 않은 것 뿐”이라는 소리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맞는 듯 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주장이다.우선 김 변호사의 주장은 김경준 씨에게 유리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데도 제출명령이 없어서 제출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어느 나라 형사체계고 간에 자신의 주장입증에 유리한 증거를 남이 제시해 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혹은 법원이 직권으로 제출을 요구할 때까지 묵혀 두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으로 남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봉쇄하지 않는 것이 대개의 사법체계의 상식이다. 선진국이고 후진국이고, 민사, 형사를 막론하고 증거제출의 자유를 갖는다. 다만 중요 증거가 '너무 늦게 제출돼'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시점까지 증거 제출을 매듭짓도록 '기회를 놓친 공격방어방법의 증거 채택 제한'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럼 이 이면계약서가 왜 (진짜로 존재하는 이명박 개입 증거라면) 김경준 씨가 스스로 미국 법원에 제출했어야 했나? 에리카 김은 “그 동안 옵셔널 벤처스를 갖고 싸운 것이지, 다스나 이명박 개인과 싸운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재판들과 이 문서는 별개”라고 주장(문화방송 '손석희의 시선집중' 녹취록 참조)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논리정연해 보이면서 궤변으로 치달을 수 있는 논리적 문제점을 갖고 있다.

에리카 김의 주장대로 이들 이면 계약서라는 것은 실상 옵셔널 벤처스로 내용이 한정된 듯 보이지만, 옵셔널 벤처스의 전신이 BBK이고, BBK의 지주회사가 LKe로 이들이 모두 줄지어 연결된 상황이고 보면, 어느 회사에 관한 자료든 간에 이명박 후보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정황이 포함되면 관련회사 자료라 해도 모두 깨내는 게 맞다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에리카 김의 표현인 “이 이면계약서 내용이 한국대통령선거에 중요한 증거이긴 하지만 직접 연관이 없어 안 냈다”는 “선거 결과를 송두리째 뒤집을 수도 있는 중요한 증거이므로, 직접 연관은 없어도 제출했다”로 이어졌어야 순리에 맞다. 이면 계약서가 히든카드라는 주장은 쇼킹한 '뉴스거리'이자 하나의 중대한 '사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자체가 '팩트'를 담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문서 위조,가짜 증권 주문,여권 7개 위조의 달인

신정아 전 동대 교수의 문제점은 위조와 날조의 기반 위에 많은 것을 쌓아올렸다는 점이다. 우선 대학 학부졸업했는지도 불분명한 신 교수는 예일 대학원의 박사 학위를 위조, 모교(?)의 후광을 등에 업고 한국에서 큐레이터의 길로 들어섰다. 물론 이 임시직과 비슷하고 큰 비중이 아니었던 말단 큐레이터의 길 역시 훗날 해당 미술관에서 '수석 큐레이터'를 한 것으로 부풀려졌다. 마치 카드 돌려막기를 연상시킨다.
김 씨의 경우도 그가 이룬 상당 부분을 위조라는 수단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신정아 교수와 공통점으로 보인다.

김경준 씨는 우선 여권을 7차례나 명의도용을 통해 위조한 공문서 위조범의 혐의를 받고 있다. 죽은 남동생을 비롯, 미국 명문대의 교수, 시장 등 고위층 인사 등을 위조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도 많은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우리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서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재판소의 인도결정판결문에도 그를 단순히 김경준으로 칭하지 않고, '김경준 또는 크리스토퍼 김 또는 크리스 김으로 알려짐'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의 실체를 밝히는 데 애를 먹은 미 연방재판소는 “그가 동생의 이름으로 미국에 들어왔으나, 상당기간 김경준의 부인 이보라와 동행한 점 등으로 그가 김경준이라는 점이 증명된다”고 설명하는 수고스러움을 감당하게 됐다.

여권 위조 뿐만 아니다. 그는 주가조작을 위한 주문량을 가공해 내는데도 선수였다. 검찰 수사 자료에는 22차례에 걸쳐 384억원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입출금 내역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주가를 올리고 내리기 위해 만들어낸 '허위 주문'이다. 주식이 실제로 거래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호가'를 올리고 내리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서류위조'와 유사한 일이다. 김 씨는 107회의 주식위장 매매와 31차례의 허위 고가 매수 주문, 32차례의 허위 고가 매도 주문, 473회의 허위 저가 매도 주문 등으로 자신이 세운 회사의 주식가격을 사실상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런 김 씨의 위조 행각을 회사설립 증거 자료쪽으로 찾아 보면 더욱 가관이다. 김 씨는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에 옵셔널 벤처스 회사자금을 투자한 것으로 금융감독원에 허위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김 씨가 금감원에 제출한 허위보고서에는 옵셔널벤처스가 미국의 '메드 퍼텐트 테크놀로지'에 29억원, '바이오 리소스 인터내셔널 코리아'에 17억원, '스피어커뮤니케이션즈'에 30억원, '워튼스트레터지스인 코퍼레이트'에 21억원 등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돈이 지급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게 우리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검찰은 미국에 범죄인인도 요청을 하면서 “옵셔널벤처스의 회사자금을 대표이사로서 처분이 가능한 점을 이용, 자신이 설립한 유령회사의 계좌를 통해 국외로 빼돌림으로써 회사 자금을 자기 개인 자금인 양 처분하였으므로 한국법상 (업무상)횡령죄가 성립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정아와 김경준, 방패활용에 능했다?

신정아 동대 교수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신 교수가 상당한 인맥을 확보, 이를 활용했다는 데 있다. 대중은 그의 화려한 언변에 녹아났고,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 많은 지도층 인사들도 뛰어난 화술에 화려한 경력으로 무장한 그에게 방심해 '알고 지냈다'. 더욱이 변양균 전 청와대 수석 같은 이는 신 교수에게 빠져들어 부적절한 관계로 지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성곡미술관의 관장 역시 그녀가 휘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준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누나 에리카 김 변호사를 통해 만난 이명박 후보를 사장으로 내세운 채 여러 회사를 만들고, 홍보했다. 이명박 후보는 나중에 BBK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가 생기고 자신의 성공한 CEO 이미지에 금이 갈 위기에 처하자 사장 명함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바지사장'이었는지 '진짜 사장'이었는지 여부 못지 않게 이명박의 후광으로 김경준 씨가 주가조작과 해외자금 반출을 저질렀다는 기본 뼈대가 이번 사건에서는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이명박이라는 한국 경영 부문에서는 특수한 사람을 끌어들여 김경준 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효과를 봤다는 점을 상기하면, 김 씨의 사건을 만드는 능력만큼은 높이 평가되야 할 듯 싶다.

그리고 신정아 교수가 자신을 키워준 변양균 실장을 수사 과정에서 철저히 압박 혹은 서로 보호하는 등 줄타기를 하며 끝까지 이용했듯, 김경준 씨도 이명박 후보를 방패막이로 활용하거나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들어가는 양상을 연출하고 있다. 에리카 김은 “내 동생이 죄를 지었다면 이 후보도 같은 죄를 지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라디오에서 주장, 이 사건을 개인비리 사건이 아닌 이명박 후보와의 공동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대선 직전이라는 정치적 거래 주장 역시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 “딜이란 없었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에리카 김은 “민사 재판에서 절차상 협의를 하는 게 있었다”고 라디오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협상이라면 딜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절히 않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조정 절차'에 비슷한 자리를 딜이라고 표현해도 되느냐는 논란이다.

신정아가 변양균을 구속되는 순간까지 적절히 활용했듯, 김경준 씨도 자신의 주자조작 사건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바꿀 만한 사건으로 부풀리는(혹은 초점을 이동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부 사실을 섞어 전체 이야기 복잡하게 꾸미는 재주

더욱이 수사선상에 오른 다음에도 전체 이야기 흐름을 흐리는 재주를 부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신정아 교수와 김경준 씨는 유사성이 있다. 신 씨가 학력날조, 청와대 고위층 개입 인사청탁 등이 주가 되는 사건을 난데없이 성곡미술관 관련 은행금고 자료를 슬쩍 흘려넣음으로써 방향을 틀게 한 점이라든지, 성곡미술관 관련 부분에 일부 사실과 어느 정도 픽션을 섞어 전체적으로 상당한 시간 지체를 하게 활용한 점은, 김경준 씨가 이명박 씨와 만난 시점이 99년이라는 점을 제시(이명박 캠프에서는 그동안 이를 부인해 왔다),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담보하는 게 이용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결국 이번 BBK 사건은 신정아 사건이 엄청난 부피와 세간의 관심 끌기에 성공했지만, 결국 그 끝에는 학력날조 사건이라는 앙상한 뼈대만이 남았듯, 현재 이명박 서명 논란, 입국 날짜 논란, 이 후보의 검찰 출두 요구가 정치적 탄압이냐 등의 논란으로 나날이 부풀어오르고 있지만 결국 주자조작 사건으로 거품이 꺼질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김 씨의 변호를 맡았던 모 변호사가 “단순한 금융사건인 줄 알았는데...... (정치사건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불평하며 변호인 사임계를 냈듯,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는지 모른다.신정아 사건의 거품이 꺼진 뒤 전국민이 알 수 없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듯, 김경준 씨 사건도 대선판도와는 관련이 크게 없는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말로 정리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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