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른 대선 후보들

'주둥이를 조심하라' 대선 정국에 내려진 특명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내려진 게 아니라 대선 후보와 후보 주변 인물들에게 내려졌다. 바로 생긴 입으로 허튼 소리를 해 대선에서 피해를 보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잘 못해 구설수에 오른 후보는 많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노인 폄하발언과 이라크 파병 용병 발언이 그를 따라 다닌다. 이런 와중에 통합신당의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이 '국민 노망'이라는 막말을 해 애를 먹고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잘 생긴 여자보다 못생긴 여자의 서비스가 좋다는 야릇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다. 이회창 후보는 전 행정실장이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바람직하다는 식의 젊은이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내뱉는 게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량이나 되는 빚을 갚기도 하지만 반대로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특히 더 그렇다.

정동영 후보는 2004년 총선 때 60대 이상 노인들은 투표 안해도 된다고 말해 큰 코 다친 일이 있다.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노인을 폄하했다.

노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꼭 이 발언이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여당은 총선에서 패했다. 정동영의 이 말은 툭하면 노인들 사이에서 툭하면 오르내리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기간을 연장한다고 했을 때도 정동영은 엄청난 말실수를 했다. 그는 파병기간을 연장을 '용병'이라는 단어를 쓰며 반대했다. '용병'은 돈을 받고 팔려가서 대신 싸워준다는 의미인데 국군을 용병에 비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정동영의 발언은 보수 단체와 재야 군 관련 단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말 잘하기로 이름난 정동영 후보가 노인 폄하 발언과 '용병'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평상시 생각이 입으로 나온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봐야 할까.

대통합민주신당의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은 국민들이 '노망'든 게 아니냐고 했다가 얼른 취소하고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 선거대책위원장 회의 도중 BBK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60%가 김경준의 말을 더 믿고 있는데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우리 국민들이 노망든 게 아니가 싶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국민 노망론은 인터넷에서 비난 댓글을 자처했다. 한나라당은 “대통합민주신당의 선대위원장들이 제정신이 아니다”고 몰아붙였다. 사태가 꼬이자 김 위원장은 “명백한 실수를 했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명박 후보도 말로 인해 언론에 오르내린 일이 있다. 지난 9월 주요 일간지 편집장들과 의 비공식 모임에서 '인생의 지혜'에 대해 설명하며 잘 생긴 여자보다 못 생긴 여자의 서비스가 더 좋다는 식으로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 후보는 자신의 선배의 예를 들며 마사지 걸을 고를 때 예쁜 여자는 남자의 손을 많이 타서 서비스가 좋지 않다며 못 생긴 여자가 더 서비스가 좋다고 했다. 삶에는 여러 가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선배의 경우를 들어 설명한 것이지만 여성계의 비판을 불렀다.

이 회창 후보의 모 행정실장은 11월 중순 이회창 후보와 중소기업인, 기자들이 함께한 북한산 산행도중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회창 후보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행정실장이 했기 때문에 이 회창 후보에게 책임 파편이 튀었다.

대선 후보들의 이런 발언은 작게 보면 하나의 말실수로 그냥 넘길 수도 있지만 문제를 삼으면 얼마든지 걸고넘어질 수 있다. 상대를 골탕 먹이고,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요즘처럼 상대방이 죽어 나자빠져야 내가 살아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권이 특히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말이다. 아무리 쉬운 말이라도 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직장에서, 친구들과 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 하지만 공인이 하는 말, 특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거리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말로 망치는 후보가 나올 것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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