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靑·黨內 갈등 및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엇박자

[투데이코리아=박기호 기자] 대한민국을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정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메르스 사태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

6월 5일 오전 현재 기준으로 국내 메르스 확진 환자는 모두 41명, 사망자는 4명으로 늘었다. 치명률도 9.8% 수준으로 높아졌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메르스 검사에서 5명이 추가로 양성으로 확인돼 환자가 총 41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추가 환자 모두 기존 확진 환자들이 거쳐 간 병원에 입원했거나 다녀간 환자들로, 모두 병원 내 감염이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밤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대형종합병원 의사 A씨가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대형 행사에 잇따라 참석했다고 발표하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모든 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의 냉담한 시선을 받아온 정치권이 정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 맞은 당청 관계
‘국회법 개정안’ 사태로 ‘당정협의’도 무기한 연기

일단,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의 관계부터 보자.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수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당청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청와대는 당정협의 회의론까지 흘러나오면서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후폭풍이 정국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의 고위 당정청 협의를 무기한 시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당청관계뿐 아니라 새누리당내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의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나서 “당·정·청 간 혼선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거나 당내 책임공방과 갈등으로 가서는 안되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수습을 시도했지만 갈등 양상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된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이 된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제정부 법제처장을 불러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재차 확인했고 모임에 참석했던 일부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 사퇴까지 요구하며 노골적으로 원내 지도부를 성토했다.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도 “지도부의 협상이 (야당에) 밀려도 너무 밀렸다는 인식이 (의원들 사이에) 확산했다”며 “순진한 협상을 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당장 비박(非박근혜) 중진인 이재오,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이 들고일어났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코너로 몰고 있는 친박계와 일부 최고위원를 향해 반격을 취한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메르스는 뒷전에 놓고 당청 간 내분이나 일으키는 이 정부가 생각이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은 유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한 인사들을 향해 “사태가 이렇게 됐으면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원내대표가 단독으로 처리했고, 최고위에서 추인을 안한 것이냐.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에게 위임을 하지 않았나. 공동책임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병국 의원도 “여당 국회의원 모두의 책임이지 왜 유 원내대표 혼자만의 책임인지 되묻고 싶다”며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에서 책임공방을 하는 것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국가 역량을 다 모아도 부족할 시점에 당청 간 갈등 모습은 국민 불안을 더 가속화시키는 무책임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회법 개정안 사태로 발전한 당청간·당내 갈등이 메르스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원순 기자회견에 뿔난 정부
“메르스 확진 판정 의사 시민 1500여명 이상과 직간접 접촉”
“서울시 주장, 사실 아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도 ‘메르스 사태’라는 위기 속에 확산되고 있다. 발단은 박원순 시장이 4일 늦은밤 기자회견을 하면서 발생했다. 박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대형 행사에 참석하며 시민 1500여명 이상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1일 35번째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 A씨는 지난달 29일부터 경미한 의심 증상이 시작됐고 30일과 31일에는 대형 행사장과 식당에 수차례 드나들며 불특정 다수와 접촉했다.

메르스 증상이 시작된 지난달 29일 병원 근무 뒤 강남구 세곡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심포지엄 참석 후 이날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에서 밥을 먹었다. 이후 오후 7시부터 30분간 서초구 양재동 L타워에서 1565명이 참석한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 후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이 전날 늦은 오후 열린 복지부 주관 회의에 참석한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인지했으며 중앙정부로부터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다”면서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보건복지부 및 질병관리본부 등에 사실 공표 및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해당 환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고 이후 동선은 물론 1565명의 재건축 조합 행사 참석자들 명단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의 발표에 중앙정부는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 “서울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일 브리핑을 통해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조치가 마치 잘못된 것처럼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입장을 발표해 국민들의 불필요한 오해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장관은 이어 “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의심환자 발생에 따른 역학조사를 신속히 실행하고 이 정보를 공유했으며 서울시와 접촉자 관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문 장관은 또 “특정모임 참석자 전원을 감염 위험자로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개인의 보호를 위해 보다 신중한 위험도 판단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복지부가 4일 이전에 35번 환자(해당 의사)에 대한 정보공유를 하지 않았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지난달 31일 해당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신속히 실시해 그 결과를 서울시 역학조사관 등과 단체 정보공유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유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주택조합총회 참석자에 대해 전수조사를 통해 자가 격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서울시에도 행사 참석자 명단 확보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고 해당 조합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강제 집행하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박 시장의 발표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5일 브리핑에서 “박 시장의 발표 내용을 둘러싸고 관련된 사람들의 말이 다르고 있다. 불안감과 혼란이 커지고 있어서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좀 더 자세한 사실들이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이어 “(확진판정을 받은 의사가) 2일 (1500여명이 모인) 재건축조합 모임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복지부는 조합에 모임 참석자 명단을 2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고, 3일 서울시와 복지부가 이 부분에 대해 논의했고 그 명단이 입수되면 서로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으로 했다고 저희는 파악된다”고 전했다.

김 수석은 또 “박 시장의 발표내용과 복지부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 환자 본인의 언론인터뷰를 보면 상이한 점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런 차이점이 있는 상황에서 (박 시장 발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사실들이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시나 복지부가 이런 심각한 사태에 관해서 서로 긴밀하게 협조해서 보다 정확한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져, 불안감이나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드린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도 “정부와 함께 협력해 메르스 확산을 차단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할 위치에 있는 서울시장이 밤 늦게 긴급기자회견을 했다”며 “사실관계가 서로 다른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 원내대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갈등하는 모습도 국민 불안만 가중시킨다”며 “우리당은 사실관계 확인부터 철저하게 해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은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 정쟁만을 벌인다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5일 “메르스 사태로 국가 비상사태”라면서 “국민 불신만 초래하는 일체의 정쟁은 당분간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당정청과 여야는 초당적으로 위기극복을 위해 협력해 국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데 총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저부터 정쟁을 유발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 역시 “정부 대책이 한참 미흡하고 불안만 더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겠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안전에 집중하고, 책임을 묻는 건 나중에 미루자”고 밝혔다.

정치권, 일단 공동 대응 논의는 한다
與野, 대표회담 열기로 합의

또한 여야는 오는 7일 메르스 사태와 관련, 정치권의 공동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대표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담에는 양당 대표 외에 새누리당에선 유승민 원내대표와 이명수 당 메르스 비상대책특위 위원장, 새정치연합에서 이종걸 원내대표와 추미애 당 메르스 대책특위 위원장 등이 참여해 ‘3+3 회담’ 형태로 개최된다.

이번 회담은 문 대표가 김 대표에 제안한 것으로, 메르스 사태 대응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양당 대표가 뜻을 모으면서 성사됐다. 이번 회담은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요구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이후 이뤄지는 것이어서 국회법 개정안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치권이 메르스 사태에 맞아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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