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알랭 플레셰르의 '도끼와 바이올린'이 임호경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됐다.

이번 작품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알랭 플레셰르는 사실 작가라는 한 단어로 소개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재능을 가진 인물이다.

현실과 환상이 서로를 반영하며 공존하는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플레셰르는 사진, 영상, 설치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2006년에는 한국에서도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그의 저작들 또한 이와 맥을 같이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데, 2004년 발표된 '도끼와 바이올린'은 이러한 플레셰르식 글쓰기의 정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출간 당시, '르 몽드'의 서평 주간 조지안 사비뇨를 비롯하여 많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통해 그가 '21세기 초반부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작가'로 자리 매김했다고 평했으며, 특히 프랑스 비평계의 큰형님 격이라 할 수 있는 필립 솔레르스는 플레셰르가 후에 스탕달, 카뮈, 르 클레지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작가의 반열에 들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생명력을 잃고 종말로 치달아 가는 서구 세계의 운명과 그 속에서 부침하는 개인의 삶을 현실과 악몽, 희망을 교차시켜 그려 낸다.

각기 '소설'과 '역사', '헛소리'라고 이름 붙인 3부는 모두 "우연히도 세계의 종말은 나의 창문 아래에서 시작됐다"라는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되며, 이 소설의 중요한 소재인 음악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비추고 변주시키며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벨라'라는 음악 선생이자 피아니스트다. 중산층에 전문직 종사자이며 자신의 인생이나 사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살아 가는 그에게 남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들과 맺는 관계이다.

모두가 에스테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여인들은 각각 아침의 에스테르, 오후의 에스테르, 밤의 에스테르라 불리며 그의 삶을 3등분한다.

하지만 각기 가정부, 제자, 정부라는 역할을 맞고 있는 이들은 실제로는 그의 질녀 에스테르 한 사람의 단면들이며, 이러한 3중의 관계는 어느 날 벨라의 창문 아래에서 시작된 세상의 종말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역사'라는 부제의 제2부에서는 이 모든 것이 벨라의 악몽 속에서 변주되며, 꿈속에서 독일군 장교의 몸 속에 들어간 벨라는 에스테르를 다시 자신의 악몽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 개인의 악몽 속으로 빨려 들어간 현실, 또는 역사 속에서 이들은 개인의 역사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출구를 찾고, 예정된 실패를 거듭하는 이 탈출은 '헛소리'라 명명된 제3부에 가서야 비로소 구체화된다.

이제 백서른 살이 된 벨라가 이스라엘의 성지를 그대로 확대하여 복사한 것 같은 '중국의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유대 종족을 생산하고 퍼트리는 과정을 보여 주는 제3부는 일견 제목 그대로 횡설수설하는 '헛소리'처럼 느껴지지만,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1, 2부의 주인공들이 결국 도달하지 못했던 생명의 잉태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도끼와 바이올린이 하나로 통합되는 진정한 연주를 그리고 있다.

플레셰르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 속에서도 모든 기호의 의미는 중의적이고 복합적이며, 항상 다른 곳에 충격적인 비밀로서 감춰져 있다.

그리고 그 내밀한 의미를 찾아내 아름다운 멜로디로 솟아나게 하는 것은 텍스트의 여러 지점들을 연결시키는 독자의 고된 해석 작업, 즉 연주를 통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끼와 바이올린'은 음악의 힘을 텍스트로 실현해 낸 진정한 음악 소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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