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대책 무용지물…서민들 '울상

[투데이코리아=김영훈 기자] 각종 금융사기 등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이 매년 감소하기는 커녕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간 전국은행연합회에 등록된 대포통장 명의인 정보를 분석한 결과 총 1만2천913명이 적발됐다.

전화 금융사기, 보이스 피싱에 악용되는 대포 통장은 주로 구직자를 대상으로 일당을 입금하는 데 필요하다고 속여 통장이나 체크카드 정보를 빼낸 뒤 대포 통장을 만들어 낸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26.9%(3천471명)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23.1%, 30대 22.9% 순이었다. 20~50대 성인 남성이 전체 대포통장 명의인의 58.6%(7천569명)를 차지했다.

◇대포통장 수법 갈수록 교묘…서민들 '울상'

최근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대포통장이다. 경찰은 대포통장 범죄가 급증을 보이면서 단속을 강화했다. 하지만 단속을 강화하듯이 대포통장 범죄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어 사실상 단속 강화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지난 5월 광주에 숙소를 마련해 보이스피싱에 사용할 대포통장을 모집해오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신용불량자나 대학생 등에게도 대출을 해주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통장과 체크카드를 받았다. 이는 통장 매입형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비롯한 스마트폰 어플 등을 통해 '통장 삽니다', '당일 입금 가능' 이라는 대포통장 매입문구 등을 게시한 후 청소년을 비롯한 가정주부, 노숙자, 신용불량자등으로부터 각조오 통장 및 현금(체크) 등을 건당 120만 원 내외 금액에 매입하는 경우다.

또 지난 3월 광주에 살던 평범한 회사원 이모(37)씨는 저금리로 수백만원을 대출해 주겠다는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고속버스 수화물 서비스를 이용해 자주 사용하지 않는 통장과 체크카드를 보내면 돈을 임금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취업과 저금리 대출을 빙자해 통장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주로 "통장 및 체크카드를 보내면 별도의 서류없이 무방문 대출을 해주겠다"라는 식으로 통장을 가로채는 것이다.

금융권의 높은 대출의 벽에 가로막힌 서민들은 조건 없이 통장만 주면 수백만원을 빌려주겠다는 범죄 조직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순간의 실수로 자신이 범법자로 전락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금융당국 대책 무용지물…솜방망이 처벌 개선 필요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는 대포통장으로 신음을 앓고 있는 금감원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2012년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고 대포통장 과다발급 금융사를 점검하기도 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지난 2월 금융감독쇄신 방향을 발표하면서 대포통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이렇게 지난 3년 동안 금융당국이 대포통장과 전쟁을 벌이면서 내놓은 근절 대책이나 시행방안만 10여 개에 달한다.

그런데도 대포통장이 줄기는커녕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연간 5만여개의 대포통장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포통장 명의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교묘한 수법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나 통장을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파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명의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이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통장 대여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위법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수백만원의 벌금만 내고 풀려나거나 집행유예를 받는 정도의 처벌에 그치는 수준이라, 정책당국의 대포통장 근절 의지의 진정성까지 도마에 오르내렸다.

◇대포통장 '불똥'…통장 개설 불만 목소리 커져

대포통장 피해 사례가 급증하자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를 근절하기 위해 통장 발급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통장 개설에 불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통장개설 목적 확인제도'라는 통장개설 증명 목적을 강화하는 절차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장 개설 시 사용목적을 은행에 밝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함게 제출해야만 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

또 아르바이트 계좌 때문에 통장을 개설하려면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이나 근로계약서 등 고용 관계를 학인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해 제출해야 한다. 사업상 통장 개설이 불가피하면 사업거래 계약서, 거래 상대방의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관련 서류를 증빙해도 대포통장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은행이 판단하면 통장 개설이 안된다. 이처럼 통장 발급이 까다로워지자 은행이 모든 금융소비자를 의심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 문턱은 내년 이후엔 더 높아진다. 금융당국이 고객확인 제도의 적용 대상을 법인으로 확대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1월1일부터는 법인도 주주명부, 등기부등본 등 실제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금융거래를 할 수 있어 고객 민원 몸살이 예상된다.

한편,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이스피싱 등의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포통장의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이 돈을 인출해 오라고 직접 요구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어 '뒷북 대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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