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다큐멘터리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다큐멘터리 <감독 미카엘 하네케>(2013)(이하 영화 하네케)는 <아무르>(2012)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칸국제영화제에서 시작해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미카엘 하네케의 초창기 영화 세트로 복귀하며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첫 단계로 소급 여행을 떠난다. 그 첫 여정은 하네케의 1992년 작품인 <베니의비디오>의 한 장면에서 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어떤 소년과 소녀가 서로 겁쟁이라며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표정하게 소년이 소녀를 바라본다. 갑작스럽게 총성이 울리고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화면은 곧 액자구조로 전환된다. 스크린 내 비디오 모니터 속에서 소녀는 바닥을 기어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고 그녀의 고통스런 비명으로 극장이 가득 채워진다. 당황한 소년은 소녀를 도우려 하지만 비명이 멈추지 않자 총을 재장전 하고 다시 한 번 쏜다. 비명은 더욱 커지고 또 한 번의 총성과 함께 비로소 비명이 멈춘다. 이 살인 과정은 모두 프레임 밖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청각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다.

이 강렬한 첫 장면은 하네케 감독의 비관적이고 불편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관객이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길 원한다. 그는 “모든 영화에서 진실에 접근하려고 했다. 실현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관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한 사실도 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실은 늘 불편하다. 영화에서 화려한 액션을 즐기지만 자신들이 폭력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하네케의 영화들을 보면 폭력의 끔찍함을 실제처럼 느끼게 된다.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세상의 어려움과 불규칙을 다듬을 필요는 없다. 진정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건 진지함과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뿐이다”라고 하네케는 말한다.

하네케는 현대 유럽 영화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다. 늘 관객들을 충격적인 폭력 장면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들의 얄팍한 윤리의식을 부끄럽게 만든다. 1997년 영화 <퍼니게임>이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수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참지 못하고 상영 중에 자리를 떴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이후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선동가 혹은 사디스트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영화 하네케는 그런 오명을 씻겨주고 아름다운 진실을 보여주려는 듯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 미카엘 하네케를 응시한다. 초기작 <베니의 비디오>부터 <퍼니게임>, <미지의 코드>(2000), <피아니스트>(2001), <늑대의 시간>(2003), <히든>(2005), <하얀 리본>(2009), <아무르>(2012)까지 거의 모든 작품들을 조망함과 동시에 실제 촬영 현장을 스케치하고 인터뷰를 통해 감독 하네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이렇게 카메라의 시선을 조용히 따라가다 결말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 그가 왜 관객들을 불편하게 했는지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아무르>의 인터뷰 중에서 “고통 속에서 존엄성을 찾으려면 사랑과 연민이 있어야 한다. 그게 가장 어렵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지 않나.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 함몰되어 액션이나 즐길 것인가? 영화가 헤피엔딩으로 끝나고 자신은 영화 속 희생자가 될 일 없으니 안심하고 극장을 나올 것인가? 그의 관점에서 안일한 자기 위안은 삶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관객에게 현실 속 고통인 부분을 마주하게 만들고 사랑과 연민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비록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라도.

사디스트 감독에 대한 아름다운 오마쥬는 오는 25일 개봉한다.

<사진제공 = 피터팬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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