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與野, 극적 타결 가능성에 주목

[투데이코리아=박기호 기자] 19대 국회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갑작스럽게 필리버스터 정국이 들이닥쳤다.

2월 임시국회 막바지에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직권상정에 나서자 야권이 이에 대항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한 것이다.

소수당이 다수당을 견제하고자 헌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는 안건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장시간 발표해 의사진행 자체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1973년 폐기된 뒤 2012년 개정 국회법에 포함돼 부활됐다.

전날(23일) 필리버스터의 첫 번째 주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총 5시간35분간 발언을 했다. 이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5시간 19분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세 번째로 발언대에 선 같은 당 은수미 의원은 국내 최장 기록인 1969년 8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의 10시간 15분 보다 3분을 더한 10시간 18분으로 최장 발언 기록을 세웠다.

반세기만에 이뤄진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은수미, 김광진을 비롯해 네 번째 주자인 정의당 박원석 의원의 이름이 올라가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도 상반된 상황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사회가 불안하고 어디서 그 테러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황 하에서 경제가 또 발전을 할 수가 있겠느냐”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게 다 경제 살리기와 연결이 되는 일인데 그 여러 가지 신호가 지금 우리나라에 오고 있는데 그것을 가로막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은 또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얘기냐”면서 “이거는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생각한다”고 개탄했다.

여당 역시 야당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40년 만에 도입된 필리버스터의 첫 작품이 바로 국민의 안전을 생명을 지키기 위한 테러방지법 저지”라며 “야당이 뇌사국회로 전락시키더니 안보마저 무방비상태로 만드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원내대표는 또 “엄중한 안보상황에서 야당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는 국민안전에 대한 테러”라며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니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까지 진영논리와 당리당략에 이용할 수 있는가”고 물었다.

또한 “북한 김정은이 대남 테러 역량 강화 지시를 내렸고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청와대를 1차 타격 대상으로 협박한 심각한 상황”이라며 “외국에서는 아무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더라도 국가안보와 국민안보를 위해 여야가 하나가 되어 협력한다”고 꼬집었다.

원 원내대표는 “더민주의 행태는 국가도 국민도 안보도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정치쇼”라며 “테러방지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를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필리버스터에 대해 “다수당의 횡포와 독주 속에서 경제 균형이라는 의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하나의 투쟁 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 “과반으로 행해지는 과반 독재를 막기 위한 야당의 최후의 보루”라고 설명했다.

이 원내대표는 “우리나라 포털 10대 검색 순위에 필리버스터와 관련된 5개 검색어가 10시간 이상 계속되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필리버스터에 폭발적으로 성원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어 “국정원의 무차별적인 대국민 감시와 통제권이라는 날개를 받아들은 박근혜 정부의 폭주에 정의화 국회 의장마저 동조하고 나선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면서 “직권상정 요건은 전시에 준하는 비상사태인데도 의장은 전시 또는 사변,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현 사태로 보고 직권상정을 했다. 이는 엉뚱한 판단이지만 그 배후에 박 정권의 압박이 놓여 있다”고 박근혜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의 의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국회의장마져 박 정권의 휘하에 들어가 의회주의의 무너진 모습을 보고 있는게 현실”이라면서 “이를 우리당 의원들이, 우리당을 지켜주는 국민들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지켜내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버스터는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수단이지만 야당의 벼랑 끝 전술로도 활용이 되고 있다. 더민주는 2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다음달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수도 있다고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야의 논의가 조만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 상태로는 쟁점법안을 비롯해 선거구 획정안 등의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는 이날 오후 늦게 만나 실무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결국 야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야당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된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상태이기에 더 이상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거구 획정을 위한 본회의가 26일 예정됐기에 필리버스터를 멈출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더민주가 지목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의 수정 여부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대테러) 조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새누리당이)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정보수집권을 국정원에 두지 않고 안전처에 둬야 하느냐는 주장을 계속 해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 고민점이 있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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