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이 아름다운 영화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벚 꽃을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사쿠라가오카 초등학교가 있는 어느 동네. 신임 교사 아카노(코라 겐코)는 늘 제멋대로인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수업 중에 오줌을 싼 아이는 왕따를 당하고 끝내 수업시간에 싸움을 벌인다. 자신의 딸 아야네를 대할 때는 언제나 차가운 미즈코(오노 마치코)는 딸을 학대하는 엄마다. 하지만 밖에서 엄마들 모임에서는 여느 엄마들처럼 밝게 웃는다. 전쟁의 상처를 앉고 홀로 살아가는 치매 할머니(키타 미치에)는 철이 지나 다 지고 없는 벚꽃 잎을 봤다 말하고 마트에서는 계산을 하지 않고 물건을 들고 나온다. 동네의 자폐아인 히로야와는 매일매일 인사를 하고 열쇠를 잃어버린 그를 집에 데려와 돌봐주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언론에 보도되는 아동학대 관련 뉴스들이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는 요즘, 이웃 일본에서 이 문제를 다룬 영화가 봄바람을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 영화 <너는 착한 아이>는 아동학대, 왕따, 장애아, 치매노인과 같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문제를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어루만지는 영화다.

우리 동네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문제들

영화는 ‘동네’라는 일상 속에 각기 다른 세 가지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모두 세 명의 주인공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그들이 같은 동네에서 생활한다는 설정으로 우리의 ‘일상’일 수 있음을 표현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에 하루 정도만 유심히 관찰해 보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엄마에게 혼나면서 울고 있는 아이, 힘겹게 밖으로 산책하러 나오신 어르신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장애인들 등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돌이켜보면 익숙한 풍경들이다.

이런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상처 받은 누구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끔찍한 아동 상대 범죄들에 대해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내일부터라도 우리 동네에 그런 경우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원영이 사건’도 만약 주변의 좀 더 세심한 관심이 있었다면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다.

해결의 방법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오카노가 교육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을 때, 그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은 뜻밖에도 어린 조카의 따뜻한 포옹이었다. 인형처럼 조그마한 아이가 자신에게 안겨 힘내라고 토닥이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라.

미즈코가 학대하는 엄마가 된 것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하며 자라서, 막상 부모가 되었을 때 어떻게 아이들을 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즈코를 구원한 것은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 알게 된 오오미야(이케와키 치즈루)다. 미즈코와 같이 다니면서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집에 놀러온 미즈코가 화를 참지 못해 아야네를 때리려 하자 와락 그녀를 껴안는다. 오오미야 자신도 학대 받는 아동이었는데 이웃의 할머니가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에게 “넌 소중한 아이야”라며 말해줬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처를 받는 것도 인간이고 구원을 받는 것도 인간이다

오미보 감독은 “상처를 받는 것도 사람 때문이고 치유를 받는 것도 사람으로부터라고 생각한다”며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극적인 연출을 자재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연출 의도를 밝힌바 있다.

아카노가 조카에게 포옹을 당하고 나서 뭔가 깨달을 듯 반 아이들에게 내 준 숙제는 가족들에게 포옹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그 느낌을 아이들에게 말해보라고 한다. 아이들의 대답은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추억이 떠올랐다”, “이상했다” 등 다양하다. 결국 아카노는 ‘부모 대 아이’,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감정들을 느끼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노력 – 벚꽃 엔딩

치매 할머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이미 저버린 벚꽃.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흩날리는 벚꽃 장면은 단순히 치매 노인의 환상이 아니라 보려고 하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상상력의 부재 등 인식론적인 성찰이 담긴 장면으로 읽어야 한다.

동네에서 익숙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내 일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이 내면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우리의 일상에는 이런 문제들을 회피하지 말고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갖고 두려워하지 말고 상처 받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될 수 있으면 꼭 껴안아 주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아이들을 꼭 안아주면 세상의 평화가 온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다. 오오미야가 포옹해줬기 때문에 미즈코가 더 이상 학대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한 가지 좋은 해결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고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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