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본주의의 잔혹한 민낯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요즘 삶을 살아가면서 흔하게 느끼는 감정은 ‘답답함’이다. 정말 잘 못 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야만 하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의 자리를 기꺼이 ‘현실’에 양보한다. 점점 더 희박해져만 가는 정의로운 것들(윤리, 도덕, 우정, 사랑, 진실, 개성 등등)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현실’이냐 ‘정의’냐 라는 선택의 문제

영화 <라스트홈>은 이렇게 ‘현실’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데니스 내쉬(앤드류 가필드)는 은행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하루아침에 홈리스가 된다. 건설 막노동을 하는 그는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일거리도 구하기 힘들다. 그러던 중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마이클 셰넌)가 자신과 함께 일하면 큰돈을 벌수도 있고 집도 되찾을 수 있다며 달콤한 제안을 한다.

데니스는 릭이 하는 일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서민들을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가족과 집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의 일을 돕게 된다. 그러나 릭의 일에 점점 깊이 개입하면 할수록 그의 내적 갈등은 깊어진다.

돈은 많이 벌지만 남을 짓밟아야 하므로 정신적 고통이 따르는 일과 마음은 편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는 일을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사실 두 가지 선택 모두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은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가에 있다.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운가?

영화에는 데니스를 갈등하게 만드는 두 그룹이 등장한다. 우선 “이 나란 오직 승자를 위해서만 세워졌어. 승자의, 승자에 의한, 승자를 위한 나라야”라고 말하는 릭이 있다. 그러므로 승자 독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99%를 집어삼킬 수 있는 1%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릭의 아내와 젊은 정부, 풀장이 딸린 고급 주택들, 쾌락과 퇴폐가 용인되는 파티 등이 데니스를 유혹한다. 너무나 허술한 법과 법체계가 있다. 변호사와 결탁해서 문서 하나 조작하는 것은 일도 아니며 그것을 걸러내야 하는 판사마저 무능하고 권위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릭의 편에 서면 얼마나 불법을 저지르기 쉽겠는가 말이다. 악마의 유혹은 실로 힘이 세다.

다른 한편에는 그의 어머니, 아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 있다. 어머니는 추억이 담긴 집이 아닌 다른 집은 필요 없다 말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는 일을 심하게 꾸짖는다. 아들도 왠지 자신과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예전에 같은 처지였으면서 릭의 편에 서서 일하고 있는 데니스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성난 홈리스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모텔에 머물고 있는 릭의 가족을 폭력으로 위협한다.

편안함과 안락함의 상징인 집은 강제퇴거가 행해지면서 갑자기 지옥을 변한다. 총을 늘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위험한 장소이며, 화장실 배설물이 역류하여 악취를 풍기는 공간이고, 퇴거당하는 자의 피가 낭자하는 공간이다. 집을 잃은 자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기에 본성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데니스가 이런 공간에 남게 되고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한다면 성난 군중의 일원이 될 것은 분명하다. 과연 데니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서브프로임모기지 사태를 마주한 세계의 불안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미국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2000년대 초반 초저금리 주택 담보 대출이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04년 연방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갚지 못해 파산하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집 1,000채가 매물로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내 여러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했고 세계금융위기까지 초래한 이 대재앙 속에서도 릭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데니스처럼 집을 잃은 난민들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의로운 것들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 <라스트홈>은 금융위기와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어떤 양상으로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있는가를 99% 리얼하게 보여준다. 집 잃은 난민들의 정신적 고통과 분노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릭이라는 인물을 잔혹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냉혈한으로 상징화하고 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갖가지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긴장감 있게 묘사해냈다.

우리의 상황에 비춰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데니스 역의 앤드류 가필드는 실제 홈리스들과 2주간 생활했고 릭 역의 마이클 셰넌도 실제 퇴거 현장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라민 바흐러니 감독은 진짜 홈리스들과의 미팅을 통해 얻은 377개의 데이터를 분석했고 촬영에 그들을 참여시키기까지 했다. 배우와 실제 홈리스들 그리고 감독이 의기투합해서 획득된 리얼리티는 지금 여기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국가의 이러저러한 개발 및 발전 계획을 경험했으며 최근의 뉴타운 열품까지 겪으면서 퇴거의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치솟는 전세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전세 난민들, 내 집 마련으로 인한 대출로 신음하는 ‘하우스푸어’들이 넘쳐나고 있다. 영화 <라스트홈>은 데니스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들에게 집이라는 욕망대신에 그 주변을 애워 싸고 있는 진실을 보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다.

멀리 미국에서 건너온 이 충격적인 실화는 4월 7일 개봉한다.

<사진제공=비트윈 에프앤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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