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은 교회, 성당, 사찰로 돌아가 본분 망각하지 말아야

<정우택 논설위원>
“선거 유세를 중단하고 BBK 수사에 대한 항의 운동에 동참해 달라”

불교, 원불교, 천주교, 기독교 4대 종단 종교인들이 검찰의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 발표가 잘 못됐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한 내용이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원불교 사회개혁교무단, 실천불교 전국승가회, 전국목회자평화실천협의회)는 11일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의 발표가 비논리로 가득 차있다며 이런 식으로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검찰의 일방적 태도가 용인된다면 우리 사회가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대선 후보들에게 지금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으니 모든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검찰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국민운동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13일 광화문에서 검찰과 부패세력을 규탄하는 종교인 촛불기도회를 열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주장이다.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유세를 중단하라니 그저 한심할 뿐이다. 검찰의 수사가 잘 못됐으면 뭐가 잘 못됐다고 조목조목 증거를 댄 후에 대선 후보에게 유세중단을 요구하라는 것이다. 만일 검찰의 조사가 잘못됐다는 분명한 증거를 대면 종교인 이전에 국민들이 나설 것이다.

막연하게 비이성,l 비논리로 가득 차있고,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고 해봐야 누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할 것인가.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증거도 없이 검찰의 수사가 잘 못 됐느니, 유세를 중단하느니 하는 것은 종교인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유세중단과 BBK 촛불시위 같은 말은 그들의 주장에 대한 지지는커녕 목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차라리 성도들의 믿음생활이나 열심히 도와주고, 기도나 한 번 더 하는 게 백번 낫다. 그렇게 하면 존경은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욕은 먹지 않는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검찰의 수사 발표에 대해 반발하고 탄핵을 발의한 것은 정치인에 의한 정치행위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BBK에 자신의 목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정동영 후보를 돕는 쪽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종교인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자유다. 그렇지만 그들의 본분은 복잡한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할 것은 신자들의 믿음생활을 잘 인도하고, 전도하고, 구제 활동 등을 열심히 하면 된다.

교회에서, 성당에서, 사찰에서 충성하고 헌신해야 할 종교인들이 BBK 수사가 잘 못됐으니 촛불시위에 참여해달라고 한다면 누가 그들을 신실한 종교인으로 보겠는가. 종교와 사회에 양다리를 걸쳤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그들의 행동이 신앙적인 측면에서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인의 정치 참여는 좋은 모습이 아니다. 실제로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해 성공한 경우도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오충일 대표도 목사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김진홍 회장도 목사다. 사람들은 그들이 정치판에서 기웃거리기보다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충성하기 더 바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4개 교단의 종교인이 BBK를 물고 늘어졌다. 이제 종교인은 종교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솔직히 같은 목사이면서 어떤 목사는 BBK를 물고 늘어지는 여당에, 어떤 목사는 BBK와 관계없이 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누가 진짜 맞는 것인지, 누가 진정으로 목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한 마디로 헷갈린다. 이런 식으로 국민들은 물론 신자들을 헷갈기게 하는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알고 싶다. 그게 어린양을 인도한다는 목자의 길인지도 묻고 싶다.

이들이 BBK 촛불시위에 나선다고 해서 이 땅의 모든 종교인이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신앙인들이 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문제, 사회문제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몇몇 종교인의 행동일 수도 있다.

BBK 촛불시위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한 신앙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신앙생활을 하지만 종교 지도자의 생각이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 개인이나 단체의 생각을 마치 종교계 의견처럼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종교인은 목사든, 신부든, 스님이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종교인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종교인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BBK 촛불 시위는 종교인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그들의 자리는 교회, 성당과 사찰이다. 자신의 일도 다 못하면서 정치판에서 어떻게 콩 놔라 팥 놔라 한단 말인가.

정우택 논설위원 jwt@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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