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치관계법'마련,BBK대응 브레인 김정훈의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결정되기까지, 여러 당직자들이 노력했지만 특히 경쟁자인 대통합민주신당측의 대공세를 막아내는 데 혼신을 다한 사람이 있다. 이 일등공신은 바로 김정훈 의원. 1년 내내 정치판을 뜨겁게 달군 신당측의 BBK 공세에 맞서 때로는 신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며, 때로는 증거를 요구하고 조목조목 반격하며 최일선에서 맞섰다. 이런 이른바 의혹 정국에 대한 김 의원의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97,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도 3대 의혹 등에 맞섰던 베테랑이다.

김 의원은 이런 여러 경험을 살려 이번 대선에서 치열하게 대응하는 한편, '정치관계법 제정'을 통해 일명 '공작정치 없는 정치판' 만들기를 꿈꾸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번 대선이 승리로 끝났다고 안도하기보다는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정치관계법 입법에 대해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김 의원을 만나 2007 대선의 치열한 경험과, 그가 구상하는 정치관계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어봤다.

-공작정치특위 산하 공작정치근절소위 위원장을 맡았고, 공보부대표로서 이번 2007대선 정국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과 가장 일선에서 대응했다. 또 이미 여러 번 대선들을 치러본 경험자로서 지난 여러 차례의 대선과 비교해 이번 대선의 성격에 대해 평해 달라.

▲혼탁도는 여전히 비슷했다고 본다. 다만 우리 국민들이 현명하고 '학습효과'랄까, 근거없는 네거티브나 웬만한 네거티브에 안 넘어간다.그럼에도 신당측 저 사람들은 똑같이 하고 있다. 풍토가 바뀌었으니 아젠다를 던지고 표를 달라고 해야 되는데, 또 네거티브다. 전략도 잘못 세웠다. 그저 '한 방'에 매달렸는데, 별 게 없었다. 지난 대선 때와 이번 대선 때 행태가 똑같았다.

-신당 정치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나?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인가?

▲운동권 출신 정치인, 386들이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 국민들이 민주화는 이미 완성됐다고 보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했던 정치를 지금도 하게 되니 버림받은 것이다. 이번 대선 승리는 우리가 신당을 갑자기 압도적으로 이긴 게 아니다. 이미 재보선에서 46:0을 기록하지 않았나? 그럼 '국민들이 실망을 하고 있구나'라고 그간의 정치행태에 대해 반성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됐다.

-97,2002년 모두 대선후보의 법률특보를 역임했고 이때 3대 공작 등이 터져 이런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을 피부로 느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디어가 이번 선거법 개정안 등에 실제로 반영됐는지 설명해 달라.

▲정치관계법들이 주로 내가 제정한 법이 많다. 3대 공작 사건을 겪으면서, 이때 당시 공작꾼들의 발언을 언론에서 여과없이 보도하는 것을 봤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대업도 그랬고, 이번에 김경준도 그랬고, 증거없이 혹은 나중에 조작된 증거를 내밀고는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렇게 폭로를 하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증거를 내놓고 하라고 만든 것이다. 선관위가 보기에 증거에 객관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보도중지명령'을 할 수 있게 하고, 또 법원이 일반 사건보다 '신속한 결정'을 하도록 새 가처분 제도를 구상했다.

또 대선 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상했는데, 이 본부는 검사들로 구성되지만, 국회 동의를 통해 임명되는 사람들로 사실상 특검식으로 임명하자는 것이었다. 이 안이 실제로 입법됐으면 이번에 BBK가 특검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특별수사본부 검사들이 수사해도 각당이 협의해서 공정성을 인정한 검사들인데, 그 결과를 의심하고 나설 수 있겠나?

또 하나의 주장은 대통령에 당선돼도 나중에 후보 시절 허위폭로 사실에 공범으로 연루된 경우 선거무효소송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물론 많이 보완해야 하는 제도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정치관계법을 통과시키려 지난 봄부터 한나라당이 분주하게 움직인 바 있고, 정치관계특위도 구성된 바 있다. 현재 진행 상황과 업무가 예상보다 더딘 이유에 대해 들려 달라.

▲정치관계법으로 통칭하는 각종 법률은 전자개표 전면 폐지, 재외국민 투표 허용, 정치공작 방지, 테러 등에 의한 대선후보 유고시 1달간 대선 연기 등 이번 대선 이후에도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합민주신당측에서 정치관계법 법안들을 심의할 정치관계특위 구성 문제에서 정당간 정수 문제를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 합의된 사항들도 이행을 안 했다. 신당에서는 정치관계법 처리 조건으로 자신들에게 아쉬운 국민경선제 입법을 추진했지만, 이 문제는 민주노동당에서도 반대한 터라 신당이 도입을 강행하지 못했다. 결국 신당이 아쉬운 게 없으니 정수 문제로 핑계를 댄 것이다.


재외국민 투표 허용은 헌법재판소에서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터라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과연 다음 총선까지는 될지 모르겠다. 서둘렀으면 이미 처리가 됐을 것이다. 그래야 재외국민도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텐데......

-이번 CD 파문과 그 직후 신당이 특검법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것을 놓고, 박계동 의원은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이번 문제도 공작 정치적 속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당의 노력은?

▲CD가 보니까 이미 나온 내용이더라. CD 속 멘트를 보면 BBK를 설립했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LKe를 해서......' 등 명확하게는 말이 없다.

그러므로 이번 CD를 조사할 때 먼저, 이것이 편집이 혹시 됐는지도 봐야 되고, 둘째, 김경준과 같이 주자조작에 가담했는지, 그리고 BBK 소유주인지가 핵심 아닌가? 그런데 이런 핵심 증거를 놔 두고, CD니, 명함이니, 하는 간접증거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가 조작을 했고 BBK 소유주라면 계좌에 돈이 흘러들어간 게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검찰조사 결과 깨끗했다. 그러면 끝난 것이다.
후보가 자신없으면 특검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우리 정치 문화에서 '묻지 마 식 폭로', '아니면 말고' 류의 문화가 쉽게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지, 고견 부탁드린다. 또 이번 대선 이후에도 공작정치관련 법률을 특정 당파적 이익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계속 연구하실 의향이 있는가?

▲이번에는 우리가 스스로 정치공작을 안 하도록 법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계약서 위조된 것을 가지고 온국민이 바라보고 있고, 대한민국 국운이 걸려있고, 참 한심하다. 공작을 해도 제대로 해야지 한심하다는 것을 자기들도(신당)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의혹을 그간 몇 건 제기했을 뿐 근거없이는 안 했다. 그리고 이번 김경준 입국 과정에 대해서도 좀 있으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제는 정치 풍토 정화 차원에서 공작 관여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흐름이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격이 대선직전까지 지속됐는데, 신당이 당선 이후 및 취임 이후까지도 공세를 펼 수도 있다. 우선 당장 특검의 조사결과와 현직 대통령으로 취임후 기소 여부를 놓고, 법리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평가와 당의 대응이 궁금하다.

▲지난 번에 대선을 며칠 앞두고 이명박 당선자가 특검 수용이라는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이 당선자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이런 후보를 기소하겠든지, 취임 후 탄핵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경제대통령, 밝은 미래를 설계할 대통령, 우리 아이들이 교육받기 좋은 나라를 만들 대통령을 국민들이 원하고 있다.

만약 BBK를 가지고 계속 신당이 밀어붙인다면 우리 당에서 대응도 대응이지만, 신당은 당장 총선에서 박살날 것이다. 그야말로 맥이 끊길 것이다.

-특히 이번 BBK 정국에서 최일선을 맡아 강하게 대응했는데,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에 비해 혼자 일을 한다든지, 험한 싸움에 괜히 나섰다는 회의감을 느낀 적은 없나?

▲나는 초선 의원이다. 초선이니까 치열하게 나서서 저력있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역구에 가보면 시민들이 칭찬을 했다. 한나라당은 욕을 먹어도 바보같이 가만히 있는데 내가 나서서 그래도 고맙다는 소리였다.

다만, 나는 육탄전 같은 데에는 나서지 않았다. 논리싸움에 전념한다는 소신을 갖고 대응했다.

-이번 대선을 승리로 마무리지은 소감은?

▲일단 국회에서는 원내부대표로서, 또 선거 막판에는 선거 유세 현장에도 나서야 돼 일이 많았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특히 긴박한 일이 많아 일이 터지면 바로 국회에 나와야 되는 경우가 많았고, 유세를 하다 보니 목이 다 잠겼다. 하지만 경제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것이다. 결과가 좋게 나와 보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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