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文海 칼럼] 지금 대한민국은 그 겉모습만 보면 분명히 '선진국' 대열에 서 있다. 특히, IT 인프라에서는 세계 첨단을 걷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는 아직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 점은 우리 스스로도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나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나라를 여행해 봤다.
보통은 2, 3번 가 봤고, 어떤 나라는 10번도 간 일이 있다.
장기간, 현지인의 가정에서 민박도 해 봤고, 차를 빌려 타고 그 나라를 일주해 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내가 정의하는 선진국은 ‘보통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다. 제도와 문화로 그것이 정착되어 있다.

잘 살면서도 분노하고 있는 얼굴들로 가득 찬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그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그들은 직업선택에서 ‘적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다.따라서 직업-직장생활이 즐겁고 보람되며 상당한 대우도 받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고, 경제가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상당히 윤택하게 살고 있다. 그들이 ‘은퇴’를 기다리는 것은 제대로 가동하는 '사회안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연금생활이 그것인데, 본인과 국가가 분담, 노후를 안정적으로 지켜준다.
또 하나 내가 세밀하게 관찰한 바로는 선진국의 공통된 특징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온갖 소음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건축현장도 없으며, 라우드 스피커도 없고, 폭력시위의 소란도 거의 없다.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정신은 어려서부터 집중적으로 교육받는다.
보통사람이 속 편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선진국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 여행을 좋아하고 그들의 그러한 생활패턴을 부러워한다.

우리가 외형적인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실상의 선진국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의 형편은 남미 아르헨티나의 옛 모습과 비슷하다.
한때 아르헨티나와 일본은 곧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나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선진국이 되었으나,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가난한 후진국으로 남아 있다. 일본은 그 문턱을 넘었고, 아르헨티나는 넘지 못한 것이다.

시기적으로 지금 우리는 정말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GDP 3만 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 앞에 멈춰 선 게 10년도 더 됐다.
이 문턱을 넘으면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며, 넘지 못하면 중진국의 카테고리에 갇히게 된다.
한번 갇히면 벗어나기 어려운 게 그곳이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해야 한다.

‘기본이 안 된 인간들’이 차고 넘치고 있다. 인간교육, 전인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을 잘못 기른 것이 부모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개혁' 없이 선진국은 어렵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큰 차이 중 하나가 ‘다양성’의 유무다.
선진국은 한 사람이 자기의 적성에 따라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갈래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다.
수많은 백수와 캥거루족이 양산된 배경에는 한길밖에 모르는 왜곡된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류대, 일류기업만 있는 게 대한민국이다.
우리 산업계는 90% 이상이 중소, 중견기업들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만, 없는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

지난 4월 11일, 경북 상주시는 청소부 6명을 뽑기 위해 원서를 접수했다.
109명이 지원, 18대1의 경쟁을 보였으며 지원자 중 69명, 63%가 대졸자였다.
지난해에도 합격자 11명 중 8명이 대졸자였다.
이런 정도의 ‘인간낭비'로 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청소부가 되기 위해 대학까지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비현실적이고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
올바른 가치관의 재정립이 시급한 이유다.

허공에 떠 있는 발이 땅에 닿아야 우리에게도 앞길이 열릴 수 있다.
나는 미국인들이 쓴 책을 읽거나 그들이 만든 영화를 볼 때 정말 부러운 부분이 있다.
‘경찰을 부르겠다.’ 가 그것이다.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한 사회를 압축할 수 있는 함의가 있다.
경찰을 믿고, 경찰이 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경찰이 오면 안전이 지켜진다는 오래된 신뢰가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다.
'공권력'의 위치와 평가는 선진국이 되는 필수조건이다.
우리의 공권력이 동네북이 되어 얻어터지는 한 선진국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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