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샐러리맨서 '실세'로.. 이혼 후 몰락

[투데이코리아=이주용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이 검찰에 구속된 가운데 그가 구축한 '왕국(王國)'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으로도 십수 명이 연루되어 있어 그들이 누구인지 한 눈에 파악하기는 지금으로서도 쉽지 않다.

본지(本誌)는 최순실의 주변인물들이 어떤 인물인지, '왕국'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장기간에 걸쳐 하나하나 짚어보려 한다.


정윤회(1955~)씨는 최순실 주변인물들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이다. 다름아닌 최순실의 남편(2014년 이혼)이었기 때문이다.

정 씨 이름이 처음으로 대중에 알려진 때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다. 조선일보와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침몰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 씨와 '7시간' 동안 밀회(密會)를 즐겼다는 추측성 기사를 보도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금으로서는 당시 정 씨와 박 대통령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점이 드러나 신빙성을 잃고 있지만 당시에는 여론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왔다.

10대 학생들을 포함해 약 300명이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水葬)되던 시각, 미혼의 여성 대통령이 '외간남자'와 만남을 가졌다는 아름답지 못한 그림이 그려져 비난이 폭주했다.

알려지는 바에 따르면 정 씨는 1955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출신이다. 서울로 이사와 종로구 구기동에서 자랐다. 74년 보인상고를 졸업하고 81년부터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딛었다.

양천구 목동에 살림을 꾸리고 결혼하는 등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살던 정 씨 인생이 바뀐 때는 95년이다. 여행사를 차려 목돈을 벌던 그에게 어느날 이혼이 찾아왔고, 뒤이어 최순실이 등장한 것이다.

94년 경 최순실과 가까워졌다는 설이 있다. 커피·커피기계·체육용품 수입판매를 하는가 하면 승마장업 회사 (주)얀센을 설립하는 등 여전히 정계와 거리를 두고 있던 정 씨는 95년 무렵 40세 나이로 한 살 연하인 최순실과 결혼했다.

당시 최순실도 전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다. 최순실과 결합한 정 씨는 그해 강남구 청담동에 일식당 '풍점'을 개점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박 대통령과 친분을 가졌던 아내 최순실의 '로비'로 정 씨는 드디어 98년, 당시 대구 달성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박 대통령 보좌진으로 입문했다.


처음에는 입법보조원으로 일했지만 99년 '풍운'을 폐업하고 본격적으로 정치에 몰두해 2002년,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정 씨와 20년 가까운 친분을 가졌던 한 역술인이 2014년 10월 30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정 씨가 보좌하던 시절 박 대통령은 실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혔을 정도로 유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2004년부터 시작됐다. 정 씨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복당(復黨)한 후 재야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내 최순실은 여전히 '비선실세'로서 작용하고 있었고, 남편 정 씨도 권력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재혼한 아내 덕에 힘을 가질 수 있었지만 2007년경 부부사이가 틀어지면서 정 씨는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정 씨 부친은 지난달 22일 "유연이 애미(최순실)가 (아들) 활동을 조금 억제했었다. 우리 애가, 윤회가 거기서 실망했다"며 "유연이 애미가 대통령에게 (아들을) 인정 안하게끔 진언했다"고 밝혔다.

결국 부부는 갈등 끝에 2014년 이혼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 전에도 최순실은 "링거는 왜 맞나"고 고함을 지를 정도로 남편을 무시했다.

이혼한 정 씨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영진전문대 시간강사로 일할 정도로 몰락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담으로 2014년 11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 당시 문건유출 혐의로 해임된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자신의 횟집에 '정윤횟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했을 정도로 정 씨에게 이를 갈았다.

<계속>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