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외국인 여성교수가 공개서신 보내

[투데이코리아 = 이미숙 기자] 서울대 외국인 여성 교수가 캠퍼스에서 남학생에게 성차별적 행동을 겪었다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보낸 공개서신이 빠르게 퍼지며 공론화되고 있다.

올가 페도렌코 교수는 23일 ‘나를 괴롭힌 서울대학교 학생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번역 장한라)를 통해 지난 10월 캠퍼스에서 겪을 일을 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출신인 올가 페도렌코(39) 교수는 지난해 9월 서양인 인류학자로는 처음으로 서울대에 임용됐다.

이 공개 서한에 따르면 페도렌코 교수는 지난달 5일 저녁 9시께 서울대 캠퍼스 내 호암교수회관 인근을 지나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다가와 'coincidence'라는 영어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페도렌코 교수가 '아무 외국인에게나 다가가서 무작위로 그런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건 이상한(weird) 일'이라며 거절하자 남학생은 소리를 지르고 한국어로 욕을 퍼부으며 몸짓도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페도렌코 교수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이 몇몇은 경찰에 연락하라고 권했지만 대신 학생에게 공개서신을 쓰고 이 일을 공론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렇게 공개적인 글을 띄우는 이유에 대해 "이 사건을 성차별, 외국인 괴롭힘, 그리고 그릇된 인종적 편견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다"며 "사실 학생이 내게 한 행동들이 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를 교육하는 것은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내가 가진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페도렌코 교수는 "나는 학생의 행동이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밤 9시에 외진 곳에서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면서 낯선 백인 남성에게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또 학생의 행동이 위험한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백인 여성이라는 정형에 끼워맞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여성의 평등과 관련된 사안이고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서울대학교가 진정 세계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공개서한 전문>

10월 5일 수요일 9시 경, 내가 혼자서 어둡고 인적 없는 호암교수회관 인근을 지나고 있을 때, 한 남학생이 다가왔어요. 핸드폰을 들고, 화면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캠퍼스 내의 어느 장소를 찾는 외국인 학생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길을 찾는 것을 도와주려고 멈춰 섰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학생은 한국인이었어요. 그리고 핸드폰 화면에 뜬 사전을 나에게 가리키고 있었죠. “coincidence” 라는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달라고 내게 말했죠. 이것이 이상한 작업 멘트는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날이 어두웠고, 아마도 내가 또래 학생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었을 거예요. 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그건 이상한 요구였고 거리에는 불빛이 거의 없었으며 더구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학생은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렸어요. 한국어와 어눌한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어요.

마침내 이해한 것은, 내가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를 바란다는 얘기였어요.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어요. 아무 외국인에게나 다가가서 무작위로 그런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건 이상한(weird) 일이라고 말이에요. 나는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weird”하다는 말에 화가 났던 것인지, 학생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짓도 공격적으로 변했죠. 상황이 그렇게 되자, 만일 내가 사는 곳을 학생이 알게 된다면 추후에 문제가 커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기 시작했어요. 나를 혼자 내버려 두라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경비원을 부를 거라고 말이에요. 경비원 얘기를 꺼냈을 때 학생이 그냥 도망치기를 바랐습니다. 긴 하루를 보낸 뒤라 너무 피곤했고,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학생은 달아나지 않았어요. 그 대신 더욱 격분하며 한국어로 욕을 퍼부었어요. 그래서 경비원을 불렀고, 나는 큰길가로 걸어나갔습니다. 혹시나 더 폭력적으로 굴게 될 경우에, 적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학생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내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나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꼈고, 대단히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인 여성 한 명이 다가와서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그 남학생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고 설명했죠. 여성은 다른 여성 두 명과 함께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 셋은 남학생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학생은 조금 진정하는 것 같았으나, 그 여성들에게 말을 하면서 여전히 화를 내거나 가라앉히기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학생의 말에서 이 모든 상황이 나의 잘못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자신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고, 남학생은 얘기했죠. “외국인들은 모두들 “small talk”(잡담)을 나누지 않아요? 미국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잖아요.” 학생은 이렇게 말했어요. 너무나 믿기 어렵지만, 세 여성이 나를 대신해 학생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어서, 어느 여성도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둡고 외진 길에서 외국인 여성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가서, 임의의 질문에 답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게 내가 하려던 말인데, 글쎄, 한국어로 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나는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고, 화가 나 있었으며,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경비원이 나타났고, 이야기가 조금 더 오갔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우리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고 했습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각자 갈 길을 갔습니다. 경비원은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학생을 “당황스럽게” 만든 것 때문에 당신이 내게 보복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불안했고, 당혹스러웠고, 화가 났고, 그리고 사실 두려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그런 남성들이 우리 캠퍼스에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게 소리를 질러댈까? – 어떤 사람들은 언성만 높이고 끝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 했으며, 경찰에 연락하라고 말했습니다. 참고 삼아 말하자면, 낯선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북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그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함께 잡담을 나누지 않아요.

나는 경찰에 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튿날 학교에서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자, 몇몇 사람들이 경찰에 연락하라고 권했지만요. 그 대신, 나는 학생에게 이 공개 서신을 쓰고, 이 일을 공론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을 성차별, 외국인 괴롭힘, 그리고 그릇된 인종적 편견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요. 나는 어두운 길에서 낯선 사람과 잡담을 나누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사회적인 사안을 공론장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사실 학생이 내게 한 행동들이 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인지를 교육하는 것은 서울대학교의 교수로서 내가 가진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에 온 2015년 9월 이래, 이곳에서의 경험은 대단히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학문 공동체 안에서는 이와 같은 부적절한 행동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우리 캠퍼스 안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공개 서신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줍니다.

나는 학생의 행동이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밤 9시에 외진 곳에서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면서 낯선 백인 남성에게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일은 대중 매체에 보도된 사건들을 – 한국에서, 그러나 한국 외의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남성의 불쾌한 접근을 여성이 거절했을 때, 그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여성을 괴롭히거나, 여성을 폭행하는 사건들 말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강간 문화”라고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리 주장과 폭력을 제도화하는 사회 안에 배태된 여성혐오적인 문화인 것이죠.

또한 나는 학생의 행동이 위험한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백인 여성이라는 정형에 끼워맞췄습니다. 내가 백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학생은 내가 미국인이고, 자신의 제안에 응할 수 있으며, 잡담을 나누기 원할 것이라는 등의 편견들을 상정했습니다(모두 틀렸어요!!). 그리고 나에게 부과하려던 편견을 따르길 거부하자, 학생은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굴었습니다. 정형이라는 것은 현실을 쉽게 다루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형은 많은 경우 잘못되었으며 정형화된 이들을 억압합니다.

내가 그 남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내가 겉보기에 한국인이 아니며 누군가가 영어 단어의 발음을 배우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주의를 끌 권리는 결코 없습니다. 혹은 그 밖에 어떤 다른 이유일지라도요. 학생이 나의 주의를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때는 수강생으로 내 수업에 참석했을 때나 나의 업무 시간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뿐입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진행하는 “전지구화와 한국사회” 수업을 듣기를 학생에게 권합니다. 이 수업에서, 우리는 여러 주제들과 함께, 인종 차별과 타문화에 대한 문제적인 정형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캠퍼스는 대단히 국제적인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 서신을 보내는 것은 학생이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말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려고 시도해보고 그들과 만나보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것이 좁은 시야를 통해 형성된 편견을 없애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외국인 여성에게 다가가는 것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공공장소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며, 적절한 방식을 취한다면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임의의 단어를 발음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문제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밝은 대낮에 공적인 공간이라면 좀 낫겠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한 행동이기는 합니다. 발음을 배우기 위한 적절한 방법은 온라인 사전, 영어 수업, 혹은 전문 영어 선생님을 통하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에서 가장 우려스러웠던 것은 바로 나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던 학생의 태도였습니다.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공격적으로 변하던 그 태도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설령 그 의도가 호의적인 경우라도 말입니다. 모든 여성은 독립적인 주체입니다. 당신이 낯선 사람에게 영어 레슨, 문화 자문, 혹은 잡담을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한국인이건, 한국인이 아니건 - 어떤 이에게 접근하건 간에, 당신은 그 사람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응해주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학생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잘 설명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유감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학생과 다른 이들이 교훈을 얻기를 바랍니다. 안타깝게도, 내가 겪은 이 사건에 대해서 다른 외국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 역시 타인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는 남성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고, 우리는 이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여성의 평등과 관련된 사안이며,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서울대학교가 진정 세계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페도렌코 올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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