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희망'도 잠시, 그들은 地獄을 맛보았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눈은 낭만의 상징이다. 대지를 얼어붙게 하지만 도리어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게 녹인다. 흰색으로 뒤덮힌 순수의 세상은 정서의 변화를 일으킨다.

5차 촛불집회가 열려 가수 양희은의 노래 '상록수'가 울려펴진 26일 공교롭게도 첫눈이 내렸다. 노래의 선율은 첫눈과 맞물려 많은 이들을 '낭만' '꿈'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이 날 서울 광화문 집회 참가자 수는 경찰 추산 26만 명, 주최측 추산 130만 명에 이르렀다.

눈은 낭만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혁명'도 상징한다.

1905년 1월 22일, 제정(帝政)러시아 치하에서 고통 받던 많은 농민들이 눈길을 걸으며 니콜라이 2세 황제가 있는 황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열은 불어나고 불어나 급기야 30만 명에 이르렀다.

황궁을 지키던 군대는 이들에게 발포했고 기병대가 돌진해 창칼을 휘둘렀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러시아 국민 여론은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로 급격히 기울었다. 결국 1917년 2~10월 사이 수많은 집회시위가 발생해 같은 해 10월 대대적인 혁명으로 이어졌고, 볼셰비키(Bolsheviki)가 이끄는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세상이 변할 것으로 기대했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됐다.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은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에 정치범수용소를 세우고 많은 이들에게 누명을 씌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레닌과 체제에 대한 단 일말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았다.

레닌에 이어 권력을 쥐고서 아예 '1인 독재자'로 군림한 스탈린은 1932~1933년 사이 홀로도모르(Holodomo)를 일으켜 우크라이나 국민 250만~350만 명을 굶겨죽였다.

러시아 땅에는 '살인적인 경쟁'이 사라진 대신 '지옥같은 독재'만이 남았다.

공산당이 권력을 틀어쥔 가운데 서민들은 배급에만 의존해 살아야 했다. 소련은 농업실패로 미국에서 식량을 들여와 배분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러시아인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숨죽여 지내면서 발언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당했다. 배급에만 의존하면서 생존의 권리도 빼앗겼다.

이 모든 것이 '눈 내리는 날' 촉발됐다.

실상 "모든 것을 경쟁 없이 평등히 나눈다" "비리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사회주의는 나눠주는 주체가 욕심을 갖고 비리를 저지를 경우 독재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눠주는 사람이 없을 경우 "평등히 갖는다"는 불가능하기에(쌀 10kg를 그냥 던져두고 가져가라 하면 누구는 많이, 누구는 적게 가져가게 되기 마련이다) 투명하게 나눠줄 배분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배분자가 10할 중 1할만을 국민에게 나눠주고 "미국이 우리를 괴롭혀서 더 나눠줄 게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의심을 품는 자는 '인민의 적'이라는 누명을 씌워, 요샛말로 하면 "물타기 한다"면서 살해하면 그만이다.

칼 마르크스 등은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면서 "인간의 욕심은 본능"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무산(無産)계급은 욕심이 없는 순수한 무결점의 존재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 결과 바로 3대 혈통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의 북한이 사회주의의 최종 진화형이다. 중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적 경쟁'을 도입한 개혁개방으로 겨우 그런 신세를 면했다.

2016년 11월 26일, 많은 국민이 첫눈과 양희은의 상록수 선율에 이끌려 거리로 나섰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비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분명 단죄해야 할 것은 단죄해야 할 것이지만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만고의 진리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기우(杞憂)일 뿐일까.

점차 청와대 앞으로 다가가고 있는 잇따른 촛불집회가 과연 그 결과도 순수하게, 깨끗하게 끝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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