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대적 쇄신 정풍 있을 듯...집무상태로 향후 재판 대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김창석 기자] 특별검사팀이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하지만 삼성은 이 번 사태의 후폭풍으로 대대적 조직 개편과 정풍운동 차원의 쇄신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의 송우철 변호사는 영장심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가장 쟁점이 된 부분은 뇌물공여죄에 있어 대가성 여부였다"며 "충분히 소명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삼성의 '피해자 프레임'이 법원 설득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 영장 기각으로 내달 초까지 박 대통령을 대면조사하려던 특검팀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는 견해도 있지만 특검팀은 관계없이 SK,롯데,현대차,포스코 등 대기업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사진=대법원 홈피 발췌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9일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장시간 검토 끝에 이 날 새벽 4시 53분 특검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조 판사는 전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 10분까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했고 이날 새벽 4시 50분께 기각 결론을 발표했다. 결론을 내리는 데 18시간 이상 걸린 것으로, 깊은 고민을 거듭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그룹 서초동 사옥 사진=삼성그룹 제공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이날 새벽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서초사옥에서 밤새 대기하며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 미전실 수뇌부는 서초사옥에서 밤샘했고, 이재용 부회장이 대기했던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주변에서도 미전실 직원 10여명이 밤을 지새웠다.


다만, 삼성은 법원의 영장 기각에도 여전히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 향후 이 부회장 등이 기소되면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다퉈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에서 혐의를 벗는 게 중요하다"며 "만약 뇌물이나 횡령죄가 법원에서 인정되면 삼성전자 등의 글로벌 비즈니스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삼성그룹은 사장단은 물론 임원인사에서 상당한 후폭풍이 불가피하고 이는 대규모 물갈이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장은 그룹의 안정을 위해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미전실 핵심 수뇌부가 오너 없는 삼성을 이끌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강도 쇄신 인사를 통한 그룹 정상화 및 체질개선이 전망된다.


삼성그룹은 매년 12월 임원인사를 실시해왔으나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압수수색 등으로 인사가 미뤄졌고 올 들어서도 인사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앞서 삼성 임원인사가 오는 3월에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검팀의 활동 기간은 90일로 2월28일까지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 승인을 받으면 활동 기간이 30일가량 연장될 수 있다. 아울러 3월에 삼성 정기주주총회도 열리는 만큼 그 전에 임원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여전히 삼성 임원인사 일정은 불투명하고 총수 부재 속 최지성 미전실장 등이 삼성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추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쇄신 인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조 단위의 손실을 가져온 ‘갤럭시노트7’ 판매 중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문책인사도 더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삼성은 연말 정기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고 1월부터 본격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경영진 정기인사가 미뤄지면서 조직개편 등 후속작업 역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삼성은 삼성전자 지주사 개편 문제와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미전실 해체 문제에도 손을 대지 못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서 미전실의 발전적 해체를 공식화한 바 있다.


보통 3월부터 시작되는 신입사원 공개채용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일단 임원인사가 나야 조직개편을 하는 등 순서가 이어지게 되는데 지금 상태에서 채용계획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임원인사가 연기된 경우는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생일인 1월9일에 맞춰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1월 정기인사는 특검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인 5월 중순에야 이뤄졌다.


한편 주요 외신들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19일 새벽(한국 시간) 관련소식을 빠르게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판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하자마자 “국정농단 스캔들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고 전했다.


주요 통신사들도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소식을 서울발로 빠르게 타전했다. 로이터는 "이번 판결은 2014년 아버지(이건희 회장)가 심장마비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공백을 메우려는 이 부회장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AFP통신도 “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 횡령,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이 거부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영장 기각 판결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이 앞으로 조사를 받으면서도 한국 최고 영향력 있는 회사의 최고 자리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AP통신은 "법원이 삼성그룹 후계자를 구속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향후 특검팀이 대통령의 뇌물죄 의혹을 수사하는데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등을 통해 외국 기업이 미국 이외의 국가 공무원에게 건넨 뇌물이나 회계 부정도 처벌할 뿐 아니라 수출면허 박탈 등 제재도 하고 있다.


삼성은 향후 특검의 남은 수사와 재판에 충실히 대비하면서 한동안 올스톱되다시피 했던 투자나 사업재편, 지주사 전환 검토 등 현안에도 차근차근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9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사들이려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인수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관계자는 "수사·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하지만, 사령탑이 건재한 만큼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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