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분석

한겨레신문 발췌


[투데이코리아=김창석 기자]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를 저격하고 신군부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을 받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유언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1일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재규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와의 관계를 다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신군부는 그의 재산을 환수하고 부정축재자로 몰아갔다. 그 과정에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가짜에서 진짜로 둔갑했을 가능성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모호한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얘기는 차치하고 김재규의 마지막 유언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최근 어지러운 정국을 바라보는 보통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2013년에 출간되었지만 당시 박근혜 정권의 서슬퍼런 역사인식하에서 기도 못펴던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문영심 저)가 박근혜가 몰락하자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책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의 기록은 야심가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신의 명령과 권위가 가장 잘 통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전두환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이 사령관이던 보안사령부에서 참모들을 불러 모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재규는 자신이 부장이던 중앙정보부로 향하지 않았다. …. 차는 (중앙정보부가 있던) 남산을 지나쳐서 육본 벙커로 갔다.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하고 계엄사령부가 3권을 장악하고 난 이후에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바꾸자고 생각했다. 그는 정승화가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은 전국민이 열망하는 것인데 그 걸림돌인 박정희가 죽은 마당에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애써 사태를 낙관하려고 했다. ….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력은 박정희가 죽자 현저하게 약화되어버렸다.


평소 김재규 앞에서 설설 기던 장관과 장군들이 김재규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국무위원들은 이 중대한 사태의 처리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중구난방의 입씨름을 벌였다. …. 김계원은 그사이에 국방장관보좌관실로 가서 정승화를 불러달라고 했다. 국방부장관 노재현과 정승화가 들어오자 김계원이 말했다. “김재규가 범인입니다. 중앙정보부장이니 소란 피우면 곤란합니다. 날쌘 자들을 골라서 사고 없이 빨리 체포해야 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한겨레신문 발췌


또 "오늘이 5월23일, 아침이군요.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1심, 2심, 3심 –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재판까지 3심을 거쳤지만 또 한 차례의 재판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제4심인데 제4심은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고 하늘이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재판이 나에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이미 나는 이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목적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했고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됐고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 자유민주주의 회복의 대혁명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똑바로 판단하고 행동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내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 있습니다. 내가 집권욕을 가지고 10.26 혁명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나는 1972년 10월에 10월 유신이 반포된 직후부터 네 차례에 걸쳐서 혁명을 구상했었고, 물리적인 혁명이 아니라 박 대통령 스스로 이것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수백 번의 건의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 내 동지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 동지들이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자기의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이상으로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라고 김재규가 사형 전 날 마지막 유언장에 언급했던 말을 기록하고 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할 계획이 없었다.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함께 순순히 육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료들은 군인들의 눈치를 살핀다. 원칙적으로는 경찰이나 검찰이 다루어야 하는 형사사건임에도 군인들이 맡기로 결정지어진다. 법보다 무력이 우선이었던 유신 체제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하필 정승화 총장은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과 헌병감 김진기 소장에게 김재규 체포를 맡긴다. 전두환이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시발점이다.


책은 “김재규가 혁명의 완성 단계인 ‘신질서 수립’에 착수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이었다. 혁명을 완수하려면 자기가 옳다는 자기 확신과 함께 권력을 거머쥐려는 의지가 강렬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나는 독재가 싫어서 독재를 타도한 사람이다. 나는 군인이고 혁명가다, 내가 만일 집권하게 되면 나도 틀림없이 독재를 한다, 독재가 싫다고 혁명한 사람이 다시 독재할 요인을 만들 턱이 없다’ 고 진술하고 있다. 그는 또 ‘대통령을 희생시켰지만 대통령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도덕관이 타락되어 있지 않다'고 진술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발췌

김재규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유신체제를 타도하는 유일한 길은 박정희 살해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논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를 제거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고 김재규는 스스로 모순적이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혁명가였음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김재규의 마지막 유언은 울림이 크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열망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현 시국을 바라볼 때 더욱 울림이 크다. 양비론 같지만 권력이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순수하게 조국과 양심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많은 절대 다수 보통 국민들이 현 시국을 우려하는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와 평화는 이념(종북,진보,보수,극보수)이나 힘(권력,돈)의 과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 낀 내부의 모순을 혁명하려는 자세에 의해 거듭날 수 있는 종교적인 성질의 것에 오히려 가깝다.


그래서 과거 과격한 보수혁명가들이 폭군으로 변하고 진보 세력들이 자기 이념에 매몰돼 분열하거나 오히려 민주화 열망을 배신하는 권력화의 길을 걷게 되는 모순을 가져왔는 지도 모른다. 이제는 양심과 내부모순을 개혁하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자신의 내부 모순은 개혁하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한 과오만 비난하는 이기적인 모순덩어리가 판치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김재규는 1심 최후변론에서 자신이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긴 이유 즉 '혁명 목적'을 또박또박 이야기 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 하면서 '미국 우선(America First)주의'을 표방하자 과거 혈맹국가 중 하나인 한국의 안보문제가 급부상 했다. 미국과 중국간의 전쟁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트럼프를 상대해 우방의 실리를 도모하며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재규의 미래를 내다 본 혜안이 시사하는 바가 큰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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