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1천500조원까지 늘어날 전망…1인당 3천만원 빚더미

▲자료: 금융위원회

[투데이코리아=최고운 기자] 새해들어 생활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가계부채 역시 비상이 걸렸다. 주택을 담보로 덩치를 점점 키워가는 가계부채가 이제 터질 듯 말듯한 위험수위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지금은 주춤한 듯 보이지만 올해 1천500조원까지 증가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대출 문턱을 높이고 처음부터 나눠 갚도록 하는 금융당국의 대책으로 부채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두 달 연속 가계대출 증가폭이 축소됐다.

지난해 10월 가계부채는 7조5000억원 증가했고 11월에는 8조8000억원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가계빚은 3조4000억원 상승했고 올해 1월에는 불과 1000억원 많아지는 데 그쳤다.

가계부채가 꺾였다는 성급한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계절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둔화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11월 1만1000호에 이르던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1월에는 5000호로 절반 이상 줄었다.

또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가계부채 액을 살펴보면 매년 1월에는 평균 1조7000억원이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12월과 1월 상황을 보고 가계부채가 꺾였다고 판단하기 이르다"며 "최소한 여름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의 질이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게 사실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1월 36.9%였던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이 매월 증가했고 지난해 말 47.4%까지 상승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2015년 말 38.2%였던 이 비중이 6월 40%(40.2%)를 넘어서더니 지난해 말 기준 44.8%까지 높아졌다.

국민은행은 2015년 말 34.6%에서 2016년 12월 40.9%로, 신한은행은 2016년 1분기 31.0%에서, 4분기 40.7%로 각가 증가했다.

고정금리·분할상환 증가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여신 선진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 정책은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리고 능력 내 상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가계부채의 무분별한 증가를 막고 금리인상 등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이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여신선진화 정책으로 금리·분할상환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이 비중이 높아지면 가계부채의 관리가 가능해 지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는 달리 비관적인 추정을 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는 올해 말 가계부채 규모가 약 1천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말했다. 최저는 1천380조원, 많게는 1천540조원을 예상했다. 1천500조원은 정부 1년 예산(약 401조원)의 4배 가까운 금액이다. 가구당 7천800만원, 국민 1인당 2천900만원의 빚을 지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전망은 좀 더 보수적이다. 한은은 1천400조원 안팎, 금감원은 1천400조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분석방법과 연구 자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세 기관의 교집합은 가계대출 증가가 둔화할 수는 있어도 줄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린 사람들이야 재산을 정리하면 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부자보고서를 보면 금융자산 10억원을 넘는 부자들도 평균 5억원 정도의 대출은 있다.

문제는 수입이 뻔한 가난한 서민이다. 소득이 낮아 금융기관에 손을 벌리는, 그래서 부채가 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소득의 40%를 초과하는, 이른바 한계가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2년 12.3%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 2015년 14.8%까지 증가했다. 자영업자들, 나이가 든 노령층이 주로 한계가구를 이루고 있다.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한계가구의 44.1%는 대출기한 상환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넷 중 셋(73.6%)은 원리금 상환에 따른 생계부담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경제 상황은 악화하고, 벌이도 안 되는데 그나마 낮은 이자율 탓에 근근이 버텼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대출이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황을 보면, 5대 시중은행의 1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작년 12월을 기준으로 3.30~3.58% 수준이다.

이는 작년 6월(2.66~2.92%)에 견줘 반년 만에 0.7%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2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 12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29%로 작년 11월보다 0.09% 포인트 올랐다.

12월 3.29%는 2015년 2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이처럼 금리가 들썩이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올해 2~3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전망이 유력하다.

자본유출 등 내외 금리 차이가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면 한은도 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금리가 오르면 당장 급한 건 자영업자들이다.

한은이 발간한 '국내 자영업의 폐업률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 금리가 0.1% 포인트 오르면 폐업위험도가 7∼10.6% 오른다.

업종별로는 음식·숙박업의 폐업위험도가 10.6% 상승, 금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년층이 직장에서 은퇴한 후 많이 차리는 치킨집과 소규모 식당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는 2015년 기준 671만명으로, 이들이 국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16.2%(2013년 기준)보다 높다.

이는 앞으로 한국경제의 블랙홀이 가계부채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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