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장 권한 무소불위, 임원 인사검증시스템 도입 시급


▲국민은행 도덕불감증에 의한 내부비리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에 임원 인사검증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국민은행 홈페이지 캡처)

[투데이코리아=최고운 기자] 3천만 고객이 이용하는 자산1위 KB국민은행(행장 윤종규)의 내부 비리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본지에서는 해마다 터지고 있는 국민은행의 불법대출과 같은 내부 임직원들의 비리와 문제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국민은행은 올해 초 전 지점장이 부실회사에서 수십억원의 불법대출을 하고 뒷돈을 챙긴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은행은 또 지난해에도 지점장이 170억원 대출사기에 연루됐다. 2014년에는 동경지점장의 1700억원대의 불법대출과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이 발생해 은행권은 물론 온 나라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먼저 올해 초 징역 6년의 실형이 선고된 박모(56) 지점장의 경우 부실회사에 47억원의 불법대출을 하고 그 대가로 수억원을 챙긴 혐의다.

서울남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최의호)는 전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지점장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 추징금 2억7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모 지점장이 대출을 실행해주는 대가로 거액을 수수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그럼에도 박모씨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부인하는 등 진지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박 지점장은 2015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점장으로 재직하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47억원의 대출을 해주고 그 대가로 2억7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점장은 또 이 과정에서 부정 거래를 숨기기 위해 부동산 매매 계약, 채무관계 등을 맺는 듯 치밀하게 ‘돈세탁’ 과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의 내부 비리는 박 지점장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페이퍼컴퍼니를 끼고 국민은행 지점장 A씨와 우리은행 지점장 등이 속한 그룹이 170억원대의 대출 사기를 일으킨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폐업 상태인 페이퍼컴퍼니 10여 개를 인수해 재무서류를 조작, 세무서에 가짜 매출 신고 등을 하며 조직적으로 8개의 은행에서 170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국민은행 지점장 A씨는 페이퍼컴퍼니에 대출을 한 뒤 대출금이 연체되자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다른 페이퍼컴퍼니에 대출을 주며 ‘돌려막기 대출’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은행권 최고의 대출 사기중 하나로 꼽히는 동경지점장 1700억원대 사건은 아직도 회자될만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4년 7월 KB국민은행 동경지점장이 2010~2013년 일본 회사에 1700억원의 불법대출을 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도쿄지점 부당대출은 2012년 국민은행 내부 감사를 통해 적발됐다. 당시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실적이 뛰어나 이를 포상하려던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조사를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부당대출을 해준 것이 드러났고 이 모 전 지점장은 본국으로 소환조치 됐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금융감독기관인 금융청도 국민은행 도쿄지점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 때 자금세탁 혐의를 발견하면서 이 사건은 세간에 드러났다.

한국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국민은행 도쿄지점은 2008년부터 일본 현지 부실기업들에 1700억원 규모 부당대출을 실시한 것을 확인했다. 한도를 넘는 대출을 받기 위해 바지사장을 내세우거나 담보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대출을 해주는 식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출을 해주는 데 따른 뒷돈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지점장은 이렇게 받은 금품으로 수십억원 비자금을 조성해 국내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2월 11일 이 지점장을 구속해서 조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부당대출과 금품수수에 이 전 지점장 뿐 아니라 다른 도쿄지점 직원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지점장인 안 모씨도 이 지점장과 같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일본의 금융청이 17일 공동으로 도쿄지점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도쿄지점에서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인 직원 1명이 은행 서고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일본 현지에서는 대출업무를 담당했던 이 직원이 금융청 조사가 시작되자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보았다. 일선 직원들까지 조직적으로 부당대출에 연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조성된 비자금이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 경영진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도쿄지점은 국민은행의 내부감시 사각지대에 있었다. 시중은행에서 도쿄지점장을 지낸 한 은행원은 “국민은행은 도쿄지점장 전결로 5억엔(약 50억원)을 대출할 수 있었다”면서 “다른 은행에서는 본사 결재가 없으면 대출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합병전 구 주택은행 출신이 도쿄지점장을 돌아가며 맡으면서 부당대출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도 현지에서는 나오고 있다. 잘못된 관행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고 이를 본점에서는 장기간 모르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같은 해 8월 국민은행 주택기금부 직원이 영업점 직원들과 공모해 2010년 3월18일부터 2013년 11월14일까지 영업점에서 국민주택채권 2451매(111억8600만원)를 현금화한 후, 이 가운데 88억4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큰 물의를 일으켰다.

금감원은 이 두 사건에 대해 국민은행에 ‘기관경고’ 조치를 했다.

당시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다음부터 비리발생 지점장은 무조건 퇴출한다”며 강도 높은 제재를 선언했다.

이 전 행장은 특정 지점에 비리가 1건만 발생해도 해당 지점장은 ‘보직해임’을 하는 등 강력한 인사조치를 했다. 또 지역 본부장과 본부 본부장 등 임원에 대해서는 1번의 경고 후 퇴출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적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에도 지금까지 국민은행 내부에 지속적으로 비리가 발생하고 있어 은행권 관계자들은 국민은행 내부 감사 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민은행 직원들의 도덕성과 경영진 내부통제능력에 문제가 있음이 두 사건을 통해 나타났다고 금융권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내부통제'는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씨티은행 출신인 강정원 전 행장 때 선제적으로 내부통제장치를 마련해 다른 시중은행들보다 내부통제에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두 사건처럼 은행원 여럿이 함께 공모를 한다면 내부통제장치로 이를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민은행 내부 비리가 계속되는 이유로 꼽는 두번째 문제는 내부통제력에 이어 금융권에서는 외풍에도 쉽게 흔들리는 국민은행의 취약한 지배구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국민은행의 지배구조를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국책은행이었던 구 국민은행과 구 주택은행은 2001년 인위적인 합병을 통해 1등 메가뱅크로 탄생했다. 이후 국민은행의 CEO는 외부의 입김에 따라 수시로 바뀌게 된다. 통합 후 초대 행장인 김정태 전 행장은 회계기준 위반으로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으면서 연임에 실패했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 시 파생상품 투자로 대규모 손실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역시 금감원 제재를 받고 1년 만에 회장자리에서 물러났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카자흐스탄 BCC(뱅크센터크레디트)은행 투자손실 책임을 지고 중징계를 받고 지주 회장 도전에 실패했다.


어윤대 전 회장은 취임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회장자리에 올랐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뀌면서 어 회장도 연임에 실패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재부 출신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번에는 모피아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말도 나온다. 안정적인 지배구조 하에서 한 사람의 CEO가 오래 재임하는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와는 차이가 크다.


이처럼 CEO가 바뀔 때마다 조직의 분위기와 실세가 수시로 바뀌다보니 줄서기 문화가 생겼다는 것으로 금융권은 분석하고 있다. 국민은행(1채널)과 주택은행(2채널) 중 어느 출신인지를 따지는 채널문화도 생겼다. 고유의 국민은행 조직문화를 갖지 못하다 보니 구성원에게도 이기심과 함께 도덕적 불감증도 생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제도의 문제에 앞서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당대출을 하고 금품을 수수한다거나, 채권을 횡령하는 일은 윤리의식의 부재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은행권 전문가는 “시중은행 지점장들이 가지는 권한이 많기 때문에 마음먹고 빼돌리면 은행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며 “감사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지점장급 임원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인사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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