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들은 가장으로서 어떻게 보면 찌질하기 그지없는 치열한 삶을 살아다가 문득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 영화 메인 포스터. 사진=얼리버드픽처스 제공

타나다 유키의 <아버지와 이토씨>의 두 주인공은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절충하며 꾸려나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패배자로 보일 수 있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도 ‘가족’ 앞에서 덜컥인다. 운명처럼.


34세 아야(우에노 주리 분)는 한 때 정규직이었으나 지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독립해 살아간다. 그녀는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54세 이토(릴리 프랭키)와 우연히 술 한 잔 몇 번하다가 사귀고 동거를 시작한다. 남들이 보기에 이들의 사랑도 그저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야의 오빠와 함께 살던 그녀의 아버지(후지 타츠야 분)가 불쑥 찾아와 동거를 선언한다. 가족을 위해 일평생을 살다가 4년 전 아내를 잃은 아버지, 손자들의 중학교 입시와 며느리의 입장에 밀려난 아버지다. 잔소리 대마왕으로 통하고 “아버지는 폭탄이야. 같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할거야”라는 아야의 말처럼 괴팍하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동거를 이어갈 수 있을까.
▲ 영화 중 한 장면. 아야와 아버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얼리버드픽처스 제공


영화는 무심한 딸과 전형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을 잔잔한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미스터리함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복선들 덕에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는 매우 높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도 숨어있어 관객들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밖에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사운드(소리)에 대한 연출에 굉장히 공을 들인것처럼 보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아야가 술을 마시며 목 넘기는 소리는 아주 인상적이다. 애타는 마음이 소리로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핵심적인 미스터리는 54세의 이토 씨의 정체와 아버지가 늘 지니고 다니는 수수께끼 상자다. 아야는 이토 씨를 만나기 전의 그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아야를 끌어당기고 까다로운 아버지에 대해 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이면 그에 대한 과거에 궁금해 할 법도 하지만 아야는 정확히 선을 긋는다. 수수께끼 상자에 대해서도 아야의 태도는 비슷하다. 이 상자에 뭐가 들어있는지 열어보고 싶지만 굳이 열어보지 않는다.
▲ 영화 속 한 장면. 아야네 가족이 옛 집에서 모였다. 사진=얼리버드픽처스 제공

감독은 “남들한테 맞추느라 애써 웃다가 지쳐버리는 일이 자주 있지 않나. 영화 속 인물들은 열심히 살아오다 어느 순간 무리하는 걸 관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단념했거나, 자신의 한계를 알았거나”라고 캐릭터를 소개한다.

또한 그는 “가족이라는 테마는 지금 세상이 원하는 소재가 아닐까 싶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가족’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힘들어 한다”고도 말한다.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는 감독의 말처럼 ‘한걸음 더 나아가는 이야기’다. 극단적인 체념에서 벗어나 세상 안쪽으로 살짝 발을 걸치는 것도 괜찮다. 그것이 피곤하고 지치는 일일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켜야하는 일종의 대가라고 치자. 딸에게나 아버지에게나 똑같이. 이토 씨의 마지막 대사 “소중한 것은 도망가지 않아. 나도 도망가지 않아”라는 대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가족영화 계보는 <과속 스캔들>(강형철, 2008) 이후 가족영화의 계보가 끊긴 것처럼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잔잔하게 눈물 없이도 큰 감동을 선사하는 일본 가족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적극 추천할만한 영화다. 4월 2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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