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껴안은 ‘루니 마라’ vs 초월적 조언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인물 묘사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는 짐 쉐리단 감독의 새 영화 <로즈>가 오는 12일 개봉을 앞두고 6일 언론에 공개됐다.


짐 쉐리단 감독은 <나의 왼발>(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더 복서>(1997) 세 편에 다이엘 데이 루이스를 기용하면서 그를 명배우 반열에 오르게 한 바 있다. 그만큼 영화에 배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짐 쉐리단 감독의 특징이다.


영화 <로즈>도 주인공 로즈의 젊은 시절과 노년 시절을 연기하는 루니 마라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 그 이외에도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만큼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인물들이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영화 스틸 컷. <사진=BoXoo엔터테인먼트 제공>

1942년 아일랜드는 2차 세계대전 와중에도 영국과의 갈등이 팽배해져 한 층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 속에서 젊은 로즈(루니 마라 분)는 영국인 공군 장교 마이클(잭 레이너 분)과 사랑에 빠지지만 이런 열정이 병으로 취급받아 정신병원에 갇히고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혐의까지 더해지게 된다. 감금 생활 5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노년의 로즈(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그 곳에서도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이 때 그녀의 재심사 담당자로 정신과 의사 그린 박사(애락 바나)가 병원을 찾아온다.


이 영화는 1942년과 현재를 번갈아 보여준다. 주인공 로즈는 한 명이지만 두 배우가 연기하는 로즈는 확연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젊은 로즈는 위기감 속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에 저항하며 역동적이고 비장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반면 레이디 로즈는 한 편의 시를 낭송하듯 말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그녀의 눈동자는 늘 공허히 허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어딘가 예언자 같은 아우라를 가졌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로즈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지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 배경이 제2의 주인공인 역사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유롭지 못 했던 시대, 전쟁과 겹친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 그리고 로즈를 감금으로 몰고 간 시대가 그 주인공이다.
▲ 영화 스틸 컷. <사진=BoXoo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루니 마라는 이 모든 상황을 연기로 승화시켜야 하는 힘든 역할을 맡았다. 특히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을 탈출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병원은 밀물일 때는 바다가 되고 썰물일 때만 건널 수 있는 위치적 조건에 고립돼 있다. 로즈는 임신한 몸으로 탈출을 위해 기꺼이 바다에 몸을 던지고 필사적으로 수영해 발을 디딜 수 있는 바다 위 동굴에 도착한다. 아이를 낳고 기절한 그녀는 깨어보니 다시 병원이었다.


실제 나이 80세인 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50년 동안 한 곳에 감금생활을 하고 있는 로즈를 연기한다. 레이디 로즈는 자신이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초월한 듯 허공과 대화하고 가끔씩 이상 행동도 한다. 그러나 그린 박사와 얘기를 나눌 때는 세상을 초월하고 달관한 노인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해낸다.


사실 그녀가 진짜로 미쳤는지 아니면 실제로 아이를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미쳤다고 판단하고 감금시킨 시대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로즈는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모두 짊어진 인물이고 레이디 로즈는 그 시대의 암울함을 고발하고 아직도 진실을 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질타한다.


영화 <로즈>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 속에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드라마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을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액션에 지치고 복잡한 미스터리에 식상한 관객들이라면 가끔씩 이렇게 긴장하지 않고 배우들의 명품 연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돼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 영화 메인 포스터. <사진=BoXoo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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