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만 무성한 최투사의 뒷마당이 독립운동 당시의 서러움을 나타내는 듯하다

[투데이코리아 블라디보스톡= 김학 기자]지난 7일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858~1920)의 97주기였다. 그러나 2012년에야 국내에서 처음 추모식이 열렸고 2015년 위패를 국립현충원에 봉안했다. 정부의 노력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곳 우스리스크 현지에서 최재형 독립투사의 생가를 둘러보고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쟁운동을 하던 현장은 감회가 새로웠지만 생가의 초라한 모양새는 이곳을 찿은 관광객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 최재형 선생의 고택 모습.

본지는 지난 7일 최 선생이 1920년 4월 7일 총살되기 직전까지 거주했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고택을 찾았다.독립유공자 유적지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이곳이 최 선생이 살던 곳이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걸려있고 관리인이 그곳에 기거하고 있었다.
▲ 덩그러니 붙어 있는 안내판만이 이 곳이 최재형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거주하던 곳임을 알려준다. [사진 =김학 기자]

지난 2015년 11월에 우수리스크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고택을 매입해 현재 내부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영사관에 따르면 고택 뿐만 아니라 기념비 건립도 추진 중이며 올해 안에 관리동을 완공하고 2018년까지 기념관 조성을 완료할 예정이다.


박관석 우수리스크 주재 영사는 “기념비 하나 세우는데도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외교부와 국가보훈처의 도움을 받아 추진 중인데 현지 사정상 진행 과정에 어려움이 많아 준공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사진 =김학 기자]

최재형 선생뿐만 아니라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다 순국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현지 사정이나 우리 정부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추모 사업 진행이 늦어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의사를 후원하고 독립군 군자금을 대며 항일투쟁의 대가로 알려졌다. 우수리스크 고택은 그가 생애 마지막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선생의 희생정신이 어려 있다. 또한 이상설, 이준, 이종호,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과 단지동맹을 맺기도 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최재영 선생은 이곳에서 일본 첩자들의 신고로 밤늦게 체포되어 재판을 거치거나 조사를 받지도않고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도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나 기근과 아사, 질병 등을 피해서 이곳 연해주로 도피해 러시아인의 양자로 들어가 크게 성공해 부를 축적했다. 러시아국적을 취득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여 독립운동을 해왔다. 러시아에 이주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독립의 그날을 고대하며 투쟁했으나 끝내는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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