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을 통한 실존 인물 묘사로 시대를 표현하는 장인 이준익 감독 작품

▲ 포토타임 후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이준익 감독, 최희서, 이제훈.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1920년대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했던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박열을 다룬 영화 <박열> 언론시사회가 13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렸다.


이준익 감독과 배우 이제훈, 최희서가 참석했다. 지난해 영화 <동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감독이 다시 한 번 실존 인물을 다룬 역사 영화를 연출해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


영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의 이제훈이 박열 역을 맡았고 <동주>에서 동주의 일본인 연인 쿠미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최희서가 정신적 동지였던 후미코 역을 맡았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이 만들어낸 ‘조선인이 우물에 독극물을 풀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일본은 당시 도쿄에서 ‘불령사’라는 조직을 이끌며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박열을 황태자 암살 모의라는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해 요즘말로 하면 물타기로 조선인 학살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상황이 불리해진 박열은 일본의 계략을 간파하고 치밀하고 기발한 전략을 세운다.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일본이 꾸며낸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고 법정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아나키즘 특유의 강렬함으로 조목조목 지적한다.


▲ 화사한 미소로 질문데 답변하고 있는 배우 최희서.


일본인으로서 박열의 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의 열렬한 팬이자 그의 항일운동을 돕던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도 그의 사상적 동지로서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 그와 함께 일본 법정에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맹렬히 비난한다.


이들은 감옥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동지 서약’을 매개로 똑같이 행동하고 저항하며 둘 사이의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을 만들어간다.


동시대를 다룬 영화들이 ‘애국심’ 혹은 ‘항일정신’에 기반을 둔 숭고함을 부각시키는 것과 달리 영화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가 자신들의 확고한 신념으로 제국주의의 모순을 깨부수는 통쾌함 만들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영화는 유쾌하며 한국적인 해학의 미가 다른 영화들보다 더 풍부하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는 반일 영화가 절대로 아니다”라며 “확고한 신념을 가진 두 청춘 남녀가 제국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 강렬한 카리스마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낸 이제훈.


이어 이 감독은 “자주 시대극을 다루는데 근현대 인물을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폄훼도 없어야만 하는 선택의 연속이었다”며 연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준익 감독은 등장인물, 박열과 후미코의 대사, 의상, 그 밖의 모든 디테일들에 대한 고증을 철저하게 거쳤다고 말했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과 극의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부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이 ‘박열’이지만 사실상 그와 차이 없는 비중을 가진 인물이 후미코다. 그녀는 시대를 뛰어넘은 여성 캐릭터로서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시대에 저항하는 잔다르크적인 놀라운 여성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최희서.


최희서는 “박열과 후미코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며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국인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라는 대전제에서 벗어나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느끼고 자연스럽게 체득한 신념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했고 이것은 박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연기 인생 중 가장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한 이제훈은 “영화가 갖는 무게감이나 책임감이 굉장히 컸던 작품”이라며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때에도 나 자신과 끊임없이 조율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다”고 자신의 연기해 대해 스스로 평가했다.


이어 그는 “90년 전의 인물이지만 요즘 기준으로 봐도 박열은 급진적이고 뜨겁고 과격한 인물”이라며 “관객 분들이 부조리한 상황과 마주쳤을 때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생각들의 체계가 확실히 갖춰져야 설득력이 생기고 그런 이후에 박열처럼 부조리함에 강력하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신념이 생기는 것 같다. 박열을 연기하면서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전했다.


▲ 후미코와 박열을 각각 연기하며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준 최희서와 이제훈.


간담회 현장에서는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는 선후배 배우의 훈훈한 모습도 펼쳐졌다. 최희서는 “시나리오를 다 읽은 후에 감독님이 박열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 배우가 누구인 것 같냐고 물으셨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제훈 선배님이라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영화 <고지전>에서 선배님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희서는 “저는 주연을 처음 맡는 것이라서 걱정을 해었는데 선배님에게 자주 물어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제훈은 “동주 이전부터 희서 씨의 연기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동주를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됐다”며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대표 배우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영화 <박열>은 당대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의 육성으로 녹음된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두 청춘 남녀의 애절함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김인우, 권율, 민진웅 등 신스틸러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만끽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도 제공한다.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통렬하게 깨부수는 영화 <박열>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 박열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이제훈의 평범하지만 온화한 기품.

▲ 포토타임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제훈.

▲ 실제 부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는 케미를 자랑하는 이제훈과 최희서.

▲ 영화 '박열'의 주역 이준익 감독, 최희서, 이제훈.

▲ 영화 '박열'의 인상적인 3차(왼쪽), 4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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