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식 기자의 스포츠돋보기 (6)

라모스 신임감독, 방출명단에 이영표 올려

2000년대 들어 한국축구 최고의 왼쪽수비수로 군림한 이영표. 타이트한 수비와 풍부한 활동량, 화려한 개인기와 특유의 성실함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주로 팀의 에이스에게 부여되는 등번호 10번을 달 정도로 한국축구를 이끌어가는 재목이었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에서도 수준급 플레이를 펼치며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실력파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이영표는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려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팀을 위해 뛰었던 팀에게서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했다. 같은 왼쪽수비수인 가레스 베일을 영입하며 이영표의 출전시간에 제한을 뒀던 마틴 욜 감독의 경질이 그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은 결국 빗나가게 된 것이다. 그가 신임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계획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세비야의 지휘봉을 잡았던 라모스 감독은 측면수비수를 두 가지로 활용한다. 비교적 약팀과의 일전에서는 매우 공격적인 윙백을 두며, 반대의 경우엔 중앙수비수를 겸할 수 있는 선수를 배치한다. 이영표의 가장 강력한 포지션 경쟁자인 가레스 베일은 바로 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영표는 양쪽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유형이다. 그와 호흡이 잘 맞았던 엣하르 다비즈의 이적 이후 예전의 날카로운 오버래핑과 돌파는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수비적인 임무를 맡기기에는 그의 제공권 및 몸싸움 능력이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기도 힘들다.

여기에 이번 시즌 토트넘의 팀 실점은 38점으로 그 보다 더 많은 실점을 한 팀은 레딩, 선더랜드, 더비 등 세 팀뿐이다. 물론 팀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인 레들리 킹의 오랜 부상, 리그 정상급 골키퍼인 폴 로빈슨의 갑작스런 부진 등이 맞물리긴 했지만 수비수인 이영표에게 있어서 많은 팀 실점은 그에게 불리한 정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서른을 훌쩍 넘긴 그의 나이 역시 어느 정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정황이 이영표의 실력부족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또한 라모스 감독이 이영표를 무조건 방출시키겠다고 얘기한 적 역시 없다. 이영표가 예전의 활발한 오버래핑이 최근 들어 뜸해진 것은 미드필더들의 협력수비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라모스 감독이 새판을 짠다면 예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번 시즌이 끝난 후 스스로 거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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