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티 커피는 마셨을 때 입 안에서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와야"


▲ 커피명가에서 운영하는 '라핀카' 1층의 실내(사진=최치선 기자)

▲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사진=최치선 기자)

[투데이코리아=최치선 기자] 대구광역시 수성구 국채보상로 953-1에 위치한 곳에 수상한 건물이 보인다. 무엇을 하는 곳일까? 하얀 건물에 빨간 작은 문. 간판을 보니 La Finca라고 쓰여 있다. 스페인어로 ‘농장’을 뜻한다는 라핀카인데 그렇다면 도심 한 복판 이상하게 생긴 건물 안에서 소나 돼지 또는 염소 닭, 개 등을 키운다는 말인가? 하지만 터무니없는 상상은 건물에 가깝게 다가가자 싱겁게 깨지고 말았다. 밖으로 새어나오는 커피 원두의 구수한 향이 코를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박물관 같은 카페와 창고 같은 문화공간의 매력


라핀카는 2층으로 된 건물인데 외관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하얀 외벽에는 잘생긴 커피나무를 그려 넣었다.

커피콩이 흩어져 있는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자 밖의 단조로운 느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반긴다. 꽤 넓은 홀 안에는 충분한 공간을 두고 좌석을 배치해 오픈되었음에도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배려했다. 또한 1층은 2층 홀과 연결된 천장이 높게 보이는 무척 시원한 구조였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 벽면에 커피가루를 붙여 만든 작품이 걸려 있다.


▲ 라핀카 1층의 모습(사진=최치선 기자)




2층에는 커피 박물관처럼 커피 주요 산지에서 가져온 스페셜 티가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상자 안에는 예멘, 자메이카, 콜롬비아, 케냐 등의 스페셜티 커피를 전시해놓았다. 각국 커피의 특징을 설명한 안내문과 농장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조명 아래 보석처럼 전시된 생두를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신맛, 단맛, 쓴맛 등 커피의 다섯 가지 맛을 자동차 계기판처럼 표시해놓아 마셔보지 않고도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2층의 독특함은 묵언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오래전 ‘커피명가’를 열면서 안명규 대표가 꿈꾸었던 것은 커피를 위한 곳이 아닌 소박한 공간이었다. ‘누군가 마음을 다잡고 밝은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라 핀카 2층에서는 ‘묵언의 공간’이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일자별 소량씩 볶은 마이크로랏 커피를 안명규 대표가 직접 내려 제공한다.


▲ 라핀카 계단(사진=최치선 기자)

▲ 라핀카 2층의 모습(사진=최치선 기자)
▲ 라핀가 2층 베란다에 위치한 자리 (사진=최치선 기자)
▲ 커피나무를 재배하는 온실(사진=최치선 기자)

▲ 온실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들 (사진=최치선 기자)

커피명가에서 운영하는 라핀카는 커피박물관의 기능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 시음장이자 커피에 관한 모든 체험이 가능한 커피 전문 카페이다. 건물 밖으로 연결된 온실에는 커피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 옆으로 창고 같은 건물에는 중미 과테말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가져 온 엄청난 양의 생두가 보관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대부분이 창고의 문을 열자마자 생두의 유혹에 빠져버린다. 커피에 문외한인 사람도 넓은 창고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겹겹이 쌓여 있는 생두자루를 목격하는 순간 그 규모와 짙은 생두 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로스팅 룸에 자리한 브라질에서 온 생두선별기 (세계에 3대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사진=최치선 기자)

창고에서 개최되는 음악회와 영화제에 빠져보자


라 핀카 카페를 나와 정원을 지나면 로스팅룸에서 쉴 새 없이 커피를 볶아내고 있다. 갓 볶은 커피 향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로스팅 기계 옆은 생두를 보관하는 창고다. 창고 안에는 각국에서 수입해온 어마어마한 양의 생두가 자루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하지만 창고에는 생두만 있는 게 아니다. 생두자루들 사이에 LP판이 진열되어 있고, 커다란 스피커가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지난 2013년 4월25일 제1회 커피명가 라핀카 생두창고 영화제를 개최한 이후 지금까지 18회에 걸쳐 작은 음악회와 영화제, 인문학강좌, 밴드, 클래식 음악감상회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는 마술 같은 곳이다. 창고에서 소극장으로 변신하는 이색 공간이다. 커피자루에 기대앉아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음악을 듣는 일은 특별한 경험임이 틀림없다.

국내 최초로 로스터 만들고 커피와 공연문화를 접목시킨 커피명가

▲ '커피명가' 본점 이준철 대표 (사진=최치선 기자)



주인장 안명규 대표가 ‘커피명가’의 문을 연 곳은 경북대 후문(북문)이었다. 이 때가 1990년으로 서울에 있는 이화여대 스타벅스 1호점보다 9년이나 빨랐다.

커피명가 1호점은 커피를 로스팅 하는 것이 생소했던 시절 자가 로스팅을 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기계(배전기, 혹은 로스터)를 만들었고, 바리스타 교육을 시작한 커피업계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래서 대구에 수많은 커피애호가들을 만든 장소가 바로 커피명가라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타벅스보다 더 유명한 커피명가는 주인장이 중미의 과테말라 농장에서 직접 생두를 들여와 로스팅 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렇게 커피명가를 대구에서 커피의 기준으로 만들기까지는 안명규 대표의 각별한 커피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커피명가의 소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짙은 커피향처럼 대구를 벗어나 서울까지 올라왔다. 지금의 커피명가는 서울의 안암동을 포함해 전국 47개 지점으로 늘어났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커피명가’의 행복한 바이러스

전국으로 확대성장하고 있는 ‘커피명가’의 존재감은 안 대표의 열정에서 그대로 읽혀진다.

안 대표는 스스로를 ‘커피헌터’라 한다. 맛있는 커피는 신선하고 좋은 생두에서 나오는 것을 알기에 좋은 커피콩이 있는 곳이라면 험한 오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간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케냐, 브라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 커피 생산국의 농장을 직접 발품을 팔아 세계 곳곳의 좋은 생두를 확보한다. 그중에서도 과테말라 COE(Cup Of Excellence)에서 7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엘인헤르또 농장과는 독점 계약을 맺었다.

커피명가의 차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좋은 콩을 들여오고 정성스럽게 로스팅해서 최고의 커피를 손님에게 내 놓는 것뿐만 아니라 좋은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같은 ‘행복한 커피’가 바로 그런 환경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매일신문사 1층에 위치한 'camp by 커피명가'와 '라핀카'(la finca) 등 커피명가 직영점에서는 매일 아침 출근시각인 8시~8시 30분까지 '행복한 커피'를 1천원에 마실 수 있다. 행복한 커피 판매대금은 전액 커피 산지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출근시간 행복하게 마시는 한잔의 커피로 누구나 나눔을 실천하는, 모두가 행복한 운동인 셈이다.

행복한 커피는 좋은 커피를 지키는 일

안 대표가 말하는 ‘행복한 커피’ 운동은 감동을 안겨준다. 좋은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하다 보니 커피 농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진짜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커피 농사를 잘 짓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학교를 지어주고 '한글'로 우리가 기증했다는 간판을 붙이고 싶었다. 커피 1등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인데, 안 대표는 그것이 좋은 커피를 지키는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수익에서 얼마를 떼 준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최소한의 땀을 흘려야 하는 '행복한 커피'를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신부님들이 커피 한잔 마시는 풍경도 좋고, 출근길 막히는 도로에 잠시 정차해 테이크아웃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즐거웠다. 행복한 커피는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하고 우리가 행복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안명규 대표는 이미 5만달러의 기금을 적립해 독점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과테말라 엘인헤르또와 엘살바도르의 카페 파카스 농장에 어린이 놀이터를 지었다. 그의 목표는 전 세계에 100개 정도의 놀이터를 짓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확산되는 본능이 있다. 안 대표가 뿌리고 있는 ‘행복한 커피’의 바이러스 역시 엄청난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질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끝으로 안 대표가 강조하는 '스페셜티 커피'는 무엇일까? 한잔의 커피맛이 살아있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면 전체 시장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진짜 스페셜티 커피는 마셨을 때 입 안에서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와야 한다.

‘커피는 소통’이라는 주인장의 철학이 배어나는 커피명가와 라핀카를 둘러보며 대구의 커피명가가 커피메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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