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어휴~’, ‘어우~’, ‘어멋! 치~’, ‘웅성웅성’, ‘키득키득’ 등등은 뮤지컬 ‘찌질의 역사’가 상연되고 있는 수현재씨어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의성어들이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20대 청춘 남녀의 서툰 연애의 흑역사를 다루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백퍼센트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었다. 웹툰 속 캐릭터들을 젊고 활기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어 공감 지수는 더욱 더 높이 올라간다. 흥행에서도 순항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일 수현재씨어터에서 희선, 유라, 연정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허민진을 만났다. 남성 배우들과는 다르게 여성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연기해야만 했다. 1명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 것도 흥미를 끌었고 특히 배우 허민진은 뮤지컬계의 뉴페이스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허민진은 뮤지컬 ‘덕혜옹주’, ‘영웅’에서 각각 덕혜(정혜)와 링링을 연기했다. 그녀의 첫 작품인 덕혜옹주에서는 주연으로서 실존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의 아픔을 뛰어난 감성으로 연기해냈다. 대형 뮤지컬 ‘영웅’에서는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소녀 ‘링링’역을 맡았다.

사실 배우 허민진은 걸그룹 멤버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중간에 드라마 '하이스쿨 러브온‘에 출연하기도 했다. 바쁜 활동 속에서도 지난해 서울예술대학 연기과를 졸업했고 틈틈이 오디션을 보며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왔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도 오디션을 통해 참여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웹툰을 보지 않았는데 뮤지컬 때문에 처음으로 웹툰이라는 것을 접하고 너무 재미있었다는 그녀다. 이전에 덕혜옹주나 영웅을 할 때는 역사를 공부했고 이번에는 웹툰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하는 노력파 배우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넘버들로 구성된 쥬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도 매력이었고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의 공감이라고 생각해왔다.


“연습할 때 주옥같은 노래들이 많았는데 극 자체가 압축적이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노래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성시경의 ‘그대네요’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노래였어요. 이번 작품에서 처음 알게 돼 푹 빠지게 된 노래는 성시경의 ‘그 자리에 그 시간에’예요. 극과 해당 씬에 딱 맞아 떨어지는 곡들인 것 같아요”



오디션을 봤을 때 그녀는 ‘희선’과 '연정'을 연기했다. 희선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이지만 이면에는 가슴 아픔 가정사를 가진 인물이다. 기혁이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내지만 운명적으로 그 사랑을 받지 못한다. ‘유라’는 준혁을 사랑하지만 망설이고 두려워하다 타이밍을 놓쳐 이별한다. ‘연정’은 세속적인 광재에게 상처받는 순수한 인물이다.


“연정이가 가장 애착이 가요. 저랑 닮은 부분이 없어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또 연정이는 극중에서 상황의 크기가 커요. 어떤 사건에 의해 절망하기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가 기쁨도 얻거든요. 이런 상황들을 제가 연정이가 돼 겪다보니 자연스럽게 애착이 갔어요. 제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캐릭터인데 어느새 제가 연정이가 되어 있더라구요”



실제 허민진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는 누군지 궁금해졌다. “실제 저랑 비슷한 캐릭터는 없어요. 각 캐릭터마다 조금씩은 제가 묻어있기는 하겠지만 세 캐릭터 모두 뮤지컬에서는 극한 상황에서 표현되다보니 그런 비슷한 상황들은 있었는데 저랑 비슷하다고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실제 배우 허민진은 어떨까. “뮤지컬의 캐릭터들은 극한 상황에서 표현되잖아요. 그에 비해 저는 현실적인 것 같아요. 현실적이면서 운명을 믿어요 저는(웃음). 아직도 낭만을 꿈꾸고 연애할 때는 바보 같은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한 번 푹 빠지면 올인 하는 스타일이지만 현실적이기 때문에 한 번 빠지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허민진은 첫 데뷔작을 크게 했다. 비운의 삶을 살다 간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다룬 창작 뮤지컬 ‘덕혜옹주’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것. 역사에 대한 무게감과 덕혜(정혜)의 비애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계의 대선배인 문혜영 배우, 윤영석 배우와 공연한 것은 그녀에게 큰 행운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대극장 뮤지컬 ‘영웅’은 ‘링링’이라는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역시 기라성 같은 선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대극장 무대를 경험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 ‘찌질의 역사’에서는 무대 위 색다른 경험, 뮤지컬 배우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극과 깨달음 등을 얻게 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처음 해보는 현대극, 새로운 관객층 등 이번 뮤지컬은 제게는 모두 새로운 경험이예요. 같은 소극장이었지만 덕혜옹주때는 (역사적 무게감 때문에) 조금의 흐느낌이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관객 반응이 다이렉트로 오는 것에 놀랐어요. 저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도 저랑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더 깊이 있는 연기도 되고 힘이 나는 것 같아요”



동료 배우들로부터 얻는 교훈도 이전과 많이 다르다고 말하는 그녀다. “이전 작품들에서 선배님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았지만 또래 배우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아요. 다들 너무 잘하는 거예요(놀람). 특히, 연기, 노래뿐만 아니라 ‘찌질의 역사’가 초연에다 창작이다 보니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참여하는데 저에게 충격이어요(웃음). 자기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면들도 다 생각하는 게 놀라웠죠. 저에 대한 부족함도 너무 많이 느꼈고요. 전에는 대선배님들이시니까 나보다 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또래 배우들이 너무 잘하니까 자극도 많이 되고 더 참여하고 제가 터치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이렇듯 허민진은 단 세 작품 만에 많은 경험을 했다. 1인 다역 출연으로 연기했던 6개의 캐릭터는 모두 제 각각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를 체험하는 매우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제가 앞으로 쎈 캐릭터, 악역 등을 맡을 수도 있는데 어떤 캐릭터를 맡던지 사랑스러웠으면 좋겠어요. 어떤 캐릭터든 간에 이유가 없는 캐릭터가 없잖아요. 그 이유가 있고 그 안에서도 사랑스러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제가 어떤 배우가 되야겠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배우가 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행복해야지 어떤 캐릭터든 소화할 수 있고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경험이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든든한 디딤돌 같은 존재다.


“제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해 준 너무 고마운 작품 이예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죠. 초연에 창작인 작품을 처음 해봤기 때문에 저 자신을 한 번 더 깨준 작품이고요 시간이 지나고 봤을 때 저의 연기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허민진은 늘 무언가를 깨닫고 배우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평소에도 뮤지컬을 즐겨 보면서 배우든 작품이든 어떤 것에서든 배울 것이 없는지 궁리하고 생각한다.



“영웅에서 정성화 선배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선배님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배우가 됐어요. 개그맨 출신으로 선입견을 깨고 뮤지컬 배우로 성공하셨잖아요. 너무 따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 매번 무대에서 하나 이상 다른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시는 분, 똑같은 작품 같은 역할이라도 그냥 하시는 게 아니라 오늘은 또 어떤 것을 발견해야지 이런 생각을 늘 하시는 분이예요. 심지어 다른 배우가 맡은 캐릭터에서 뭔가를 발견하세요(웃음). 그런 부분에서 제가 너무 많이 배웠고 너무 닮고 싶은 선배님이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은 '미스사이공'이예요.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또 닮고 싶은 배우는 전미도 선배님이예요. 스위니토드라는 작품을 보고 캐릭터 분석력이 뛰어나시고 어떻게 러빗 부인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표현하셨는지 너무 놀랐어요"


자신의 꿈을 위해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가고 있는 배우 허민진. 지금의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과 친구들은 현재 그녀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준다고 전한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아했던 거기 때문에 그걸 잘 아는 분들은 제 공연 보러 오시면 ‘정말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니까 무대 위에서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저도 기분이 더 좋고요”


그녀가 뮤지컬을 하면서 또 한 가지 얻은 것은 바로 팬들이다. “기존 팬 분들도 많이 계신데 순수하게 작품을 보러 와 주셔서 제가 표현한 캐릭터를 보시고 한 분이라도 ‘잘 봤어요’라고 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된다”고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직은 어느 쪽에서 제의가 오거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계획은 없어요. 하지만 시켜만 주신다면 기꺼이 얼마든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그녀에게 2017년은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뮤지컬 ‘영웅’의 본 공연과 전국투어도 했고 이번 ‘찌질의 역사’는 오는 8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요즘은 집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쉬는 게 제일 좋아요. 예전에는 시간이 나며 어디 놀러 갈 생각을 했었는데, ‘영웅’ 지방 공연을 많이 다니다보니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날씨도 덥고 공연 끝나고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게 요즘의 가장 큰 행복이예요(웃음)”


마지막으로 10년 뒤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은지 물었다. “10년 뒤면 38살 밖에 안 됐네요(웃음). 배우로서는 그 때 가서도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 때 적절한 나의 역할을 찾을 수 있겠으면 좋겠고요 개인적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친구들 가족들 팬들 그 자리에 건강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혼도 그 때 되면 했겠죠(웃음)”


배우 허민진은 노력을 많이 하는 배우다. 겸손함도 갖추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도 보기 좋았다. 아직도 그녀의 도화지에는 빈 페이지들이 많이 남아있다. 차곡차곡 천천히 아름다운 연기, 노래, 삶이 가득 채워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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