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 북송 추진위원회 발족

▲ 25일 오전,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은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투데이코리아=오승환 기자] 무기징역을 받고 29년간 옥살이를 한 남파 공작원을 두고 북한 송환추진위원회가 결성돼 화제가 되고 있다.

25일 오전,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은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 화해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인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원회 측은 “시대의 양심으로 고뇌하고 조국을 사랑했던 서 선생은 험난한 민족의 풍랑 맨 앞에서 맞바람 맞으며 90년을 살아온 노인이 됐다”며 “30대에 장벽이 가로막힌 남북을 오고 간 혐의로 2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사상 전향 강요로 고문을 받으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이념도 사상도 장벽도 잠시 걷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는 국가의 통 큰 아량을 기대한다”며 “서 선생의 한 많은 인생,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부디 북쪽 가족 품에 안겨 마지막 가는 길 평온하게 눈감을 수 있게 인간적인 조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송환을 호소했다.
▲ 남파 공작원 출신의 서옥렬(90)씨

한편, 서씨는 1927년 전남 신안군 팔금면 팔금도에서 태어나 6·25전쟁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자진해서 월북,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3년 인민군 전역 뒤에는 강원도 천내군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 1958년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원산교원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서씨는 1961년 8월 9일 공작원으로 남파됐고, 임무 완수 후 한 달 뒤 월북과정에서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서씨는 최종 판결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아 1961년부터 광주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1990년에 “민주주의를 헤치지 않겠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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