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남쪽 창에 비친 앞산 그리메에 연한 보랏빛이 섞여간다. 해가 막 졌다는 표시다. 이 때 서쪽 쪽문을 열면 하늘에 온통 붉은 색 보라색 물감이 번져 있다. 시골에 내려오고 나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크고 넓은 하늘이 온통 내 차지란 것이다. 아침에 막 동 튼 하늘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중천으로 올라오는 해의 발걸음이 귀에 들린다면 독자 여러분은 믿을 수 있으실까?

아침 식사 시간이 빨라진 것도 변화의 일부분이다. 새벽녘에 눈을 뜬 후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집 주위를 돌아보고 나무를 살펴보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잔디의 폭신함을 즐기다 보니 아침 운동이 충분히 되었나보다. 배고파서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하게 된다.

닷새 전에 경북 영천시 고경면 추곡길로 이사를 왔다. 용전 1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남편의 증조부께서 지으신 100년 가까이 된 고택을 손보고 옆 사랑 자리를 허물고 난 자리에 두 사람이 살 집을 지었다. 22평으로, 완공되어 입주하고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알맞다. 안방 하나에 거실과 부엌은 넉넉하게, 부엌 옆에 광 겸 부엌방을 하나 장만했다.


화장실은 하나, 특이한 점은 안방 옆에 드레싱 룸을 자그마한 대로 하나 설계했다는 것이다. 반 평 정도지만 미닫이 장도 있고 화장대도 있어 나의 비밀의 방이다. 부엌방으로는 서향의 뒷마당으로 나갈 수 있는 쪽문이 있다. 22평의 공간 어느 곳도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이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집을 지을 때 신중하게 생각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고택이 남향이라 우리 새 집은 동향으로 짓게 되었지만 전망 위주로 붙박이 큰 통창을 남쪽으로 내었다. 동쪽은 앞에 마루를 내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거실의 남쪽과 동쪽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셈이다. 남쪽은 아름다운 전경을 자랑하고 있는 까닭에 대부분의 거실 가구들은 남쪽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시 증조부가 지으신 특별한 정자가, 그리고 그 정자를 둘러싸고 있는 작은 산이 내가 아름다운 전경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곳이다.

옛날 증조께서 정자에서 기거하고 계셨을 때, 갑자기 홍수가 났더란다. 그래서 본채에서 줄을 정자까지 매어 바구니로 어른의 식사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곳이다.

엊그제는 면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우리 두 사람과 미국에 살고 있지만 주민등록이 우리와 동거로 되어있는 두 외손녀들까지 해서 네 사람이 고경면민이 된 것이다. 6개월 동안 다시 전출을 하지 않는다면 20만원의 지원금까지 준다고 한다. 시골에 내려와서 고맙다고 주는 돈? 여기서는 사람 하나하나가 귀하다고 한다. 젊은이는 모두 시골을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는 시골이다. 일본서는 사람이 사라져가는 시골에 대한 특집 방송까지 한 것을 보았다.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할 때 모두들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서울서 나고 자란 내가, 타지라면 외국 수십 개국에서 살기도 여행하기도 한 내가 한국의 시골에서 잘 살아낼 수가 있을까? 하는 시선이다. 내게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것은 최근 남편의 직장 때문에 살게 되었던 전남 화순에서 2년간의 시골 생활을 성공적으로 보낸 경험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서울의 짐을 일부 남겨 놓고 화순에서 생활했었다. 결론으로 얘기한다면 이름처럼 온화하고 순한 화순에서 전라도의 따뜻한 인심을 푹 만끽하고 돌아왔다. 이제 남편이 퇴직한 지금, 남편의 탯자리인 이곳 영천이 내 제 2의 고향이 되려 한다. 가끔씩 묘사 때 내려온 것이 전부인 이곳 영천이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맨 처음 친구가 되어준 하늘이 있으니 제2, 제3의 친구들이 곧 생길 것 같은 기대가 가득하다.


오늘도 새벽녘을 수놓은 동쪽 하늘과 구름의 조화에다 붉은 빛과 푸른빛과 흰 빛의 현란한 색채에 모네와 마네와 고흐를 떠올리며 경탄한다. 첫 친구의 방문이다.


안녕,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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