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불완전성을 소재로 탄생한 흥미롭고 반가운 심리 스릴러

▲ 영화 포스터.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맞이하기 전 당사자가 느끼는 공포와 그로 인해 남겨진 주변인들이 겪게 될 고통이 혼재되기 마련이다.


▲ 지난달 28일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왼쪽부터)배우 설경구, 김설현, 김남길, 감독 윈신연.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연쇄살인범이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영화다.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병수(설경구)는 17년 동안 살인을 중단하고 딸 은희(김설현)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어느 날 동네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동안 잠들어 있던 살인 본능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전직 연쇄살인범 병수 역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


살인자는 살인자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병수는 동네 경찰인 태주(김남길)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기억을 하지 못하는 병수. 그 사이 태주는 병수의 약점을 간파하고 은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급기야 은희와 결혼하겠다며 병수를 찾아간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가 사라져가는 기억으로 인해 범인이 자신인지 태주인지, 은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자신인지 태주인지 혼란에 빠진다.


▲ 전직 연쇄살인법과 맞대응하는 현진 연쇄살인범 태주 역을 연기한 김남길.


이렇듯 불안한 기억은 늘 흥미로운 영화의 소재가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소설에서 그려지는 병수의 불안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채무를 일정부분 가지고 간다.


김영하 작가는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독특한 통찰로 독자들의 사람을 받는 작가다. 한편으로는 그의 소설이 영화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연출을 맡은 원신연 감독은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을 영화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소설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병수의 나레이션을 병행함으로써 일종의 일기 형식으로 살인자의 불안을 묘사하고 있다. 원 감독은 “병수가 살인자이지만 응원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 아이돌 출신으로 쉽지 않은 연기 변신을 해 낸 배우 김설현.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도 바로 이 부분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병수는 태주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자신이 살인한 사람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고 태주는 자신도 병수와 똑같은 생각에서 은희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한다. 살인에 대한 명분이 완전히 사라지는 대목이다.


범죄나 살인을 다루는 영화들에서는 범인들의 자라온 환경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악의 배경에는 언제나 극악한 환경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 김설현은 전직 연쇄살인범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딸 은희 역을 맡았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여기에 과거의 살인자가 현재의 살인자에게 위협받는 상황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살인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임을 강조한다.


병수는 이러한 함의를 모두 짊어지고 있는 캐릭터다. 병수 역을 소화한 배우 설경구는 영화 전체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갈 만큼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 시사회 미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아이돌로서 매력을 뽐내녀 포토월 앞에 선 김설현.


소설이나 영화 자체도 병수를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그만큼 설경구의 역할을 막중했다. 그는 액션 뿐만 아니라 살인자의 불안을 표현해 내야 했고 게다가 어디에서도 연기 조언을 받을 수 없는 알츠하이머 환자 연기까지 부담이 상당했을 터인데 무리 없이 그 모든 것을 해냈다.


병수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딸, 연희 역을 맡은 김설현은 걸그룹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을 깰 만큼 자연스러운 20대 초반의 여성을 잘 연기했다. 그리고 힘든 액션연기까지 해냐고 특히 거친 숲을 맨발로 뛰어 다니는 장면에도 과감하게 도전했다. 나중에 여성 원톱 액션영화를 소화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영화 캐릭터 포스터.


최근 영화와 TV드라마 다방면에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남길은 사이코패스 살인마 태주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에 도전했다. <무뢰한>, <판도라>, <어느날> 등에서 형사에서부터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 남자 역할까지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그는 영화 내내 무표정하고 차가운 표정을 연기해내면서 싸이코패스의 무감각함과 잘 알수 없는 내면에서 폭발하는 잔인함을 연기해냈다. 중간 중간 터지는 히스테리적인 행동 묘사는 오싹함을 더한다.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전직 연쇄살인법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강렬하면서도 연민으로 다가오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오는 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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