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투데이코리아 회장

세계화와 지방화, 묶어서 저는 ‘세방화’라고 부릅니다, 생명운동, 인간화와 정보화를 향한 신문명의 대 조류와 함께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근본을 뒤흔드는 변혁이 놀랄 만큼 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이면서 불가역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경제가 세계 시장으로의 통합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흐름을 타고 국경 없는 무차별, 무제한의 냉혹한 경제 전쟁의 형태로 우리를 압박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농·식품 산업과 농산어촌도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농·식품 산업과 농산어촌을 살리고 키우기 위한 확실한 정책 대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보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농림수산부에서 27년 동안 전반기 반생을 보낸 저 자신도 상당한 책임을 느끼면서 반성을 해 봅니다. 결국 이렇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농정의 목표와 대상, 그리고 주체와 방법이 잘못된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 잘못은 농정의 목표를 농림수산업 지키기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림수산업 지키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농산어촌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고 한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농산어촌입니다. 도시의 과밀화와 농산어촌의 공동화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농산어촌이 살아야 농림수산업도 삽니다. 반대로 농림수산업이 산다고 반드시 농산어촌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잘못은 농정의 대상을 농림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국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농림수산업 종사자가 우선적인 정책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인 농정의 대상은 농산어촌에 사는 모든 주민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농림수산업 종사자라도 도시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농산어촌이 아무도, 특히 젊은 여성들이 살고 싶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다면 다들 농림수산업에 종사하면서도 살기는 도시에 살게 될 것이 불문가지입니다. 지금대로라면 우리 농정은 ‘도시에 살 수 밖에 없는 농림수산업 종사자’만을 위한 정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젊은 여성들이 기피하는 농산어촌이라면 젊은 남성도 따라서 기피하게 되겠지요. 젊은 남녀가 없는, 그래서 아이들이 없는 농산어촌에 미래가 있을까요? 누가 이런 농산어촌에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세 번째 잘못은 주체와 방법입니다. 농산어촌 살리기의 주체는 지방 정부와 지역 주민 스스로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중앙 정부가 획일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방법도 도시계획 수준의 농산어촌계획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접근이라야 합니다. 농산어촌 주민을 위한 일자리와 소득원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고, 도시 수준의 인프라와 기본 생활서비스, 그리고 교육, 의료, 노후보장을 포함한 복지 혜택을 고루 갖추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농림수산업 지키기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 농림축수산업과 식품산업 전체를 살리고 키울 것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주체도 정부가 아니라 젊고 유능한 농림축수산업경영인, 식품산업경영인 스스로가 되어야 합니다. 종래의 단순한 농림수산업만으로는 젊은 인력이 더 이상 오지 않습니다. 땅 파는 농사에, 힘들여 멀리 배타고 나가는 위험한 고기잡이에 어떤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고 오겠습니까?
국내 시장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안 됩니다. 그마저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비용 절감의 한계로 인해 조만간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중저가 농림축수산물 시장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접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대신에 중국, 일본,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고소득층을 겨냥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우리 농림축수산업 살리기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앞선 기술과 경영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등을 접목한 6차 산업, 첨단 식품산업으로 발전시켜 한류와 연계한 마케팅으로 세계 시장에 당당히 나서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와 합작해서라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상당수의 신지식 농림축수산업 경영인들과 식품산업 경영인들이 스스로 그렇게 해서 성공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엉뚱한데다가 돈 쏟아 붓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돈이 누구 돈입니까? 스스로 농산어촌 되살리기, 농림축수산업 살리기, 식품산업 키우기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적시에, 필요한 곳에, 가장 적절하게 그 돈이 쓰이게 해야 합니다. 농산어촌 주민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지원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세계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폐망을 초래할 뿐이라는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왕에 할 바에는 더 근본적이고 과감하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개혁해야 합니다. 길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지 않습니까?
이상무 약력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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