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주간

궁지에 몰린 생쥐와 고양이가 생사를 건 한판 싸움을 벌인 끝에 생쥐가 고양이의 급소를 물어 판정승 했다하자. 구경꾼들의 환호는 당연하다. 요즘 부쩍 갑질에 관한 화제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와중에서 ‘수퍼 갑과 을의 싸움’이 빚어져 을이 이겼는데 통쾌해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강자와 약자의 다툼에 약자 편을 들기 마련이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경찰’ ‘기업인에겐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과 한 인터넷기업 회장간의 논쟁에서 김위원장이 자신의 발언에 관해 사과하고, 꼬리를 내린 최근의 사건을 보는 관전평이다. 특히 새 정부 들어 쏟아놓은 갖가지 경제정책을 놓고 당사자인 기업들이 말 한마디 못하고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이 단막극은 많은 기업인들에게 적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주었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김위원장이 제공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진네이버창업자를 겨냥, “잡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독재자 스타일의 최악의 최고경영자다. 그러나 잡스는 미래를 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잡스를 미워했지만 존경했다”면서 “네이버 정도의 기업이 됐으면 미래를 보는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는 잡스처럼 우리 사회에 그런 걸 제시하지 못했다”고 바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에 이해진창업자와 가까운 사이이면서 동종업계 리더인 이재웅벤쳐기업협회부회장이 직설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김상조위원장이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동료 기업가로서 화가 난다”고 공박했다.
논쟁의 파장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이부회장이 먼저 톤을 낮춰 “오만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김위원장의 표현도 부적절했지만 내 표현도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같은 벤쳐 창업자로 유력 정치인인 안철수국민의당 대표가 가만있을 리 없다. 안대표는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면서 “김위원장은 이해진창업자를 평가절하하면서 문재인대통령은 스티브 잡스와 같다고 아부했다”고 꼬집었다. 어느 기업인은 “선수 생활 해본 적 없는 심판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가르치고 혼내주려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댔다. “구멍가게 하나 운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권력 잡고 완장 찼다고 글로벌 기업인을 함부로 대하고 훈계하려 드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김위원장의 사과와 반성은 신속했다. 그는 한 간담회 자리에서 “이재웅창업자가 정확하고도 용기 있게 비판한데 대해 감사드리고 무겁게 받아 들인다” 며 “겸허하게 질책을 수용하고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하고 본연의 책무에 정진 하겠다”고 공개 사과했다. 김위원장의 말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전 공정위 내부혁신 계획을 발표하면서 “나쁜 짓은 금융위원회가 더 많이 하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먹는다”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가 구설에 오르자 사과하고 자신의 실언을 주어 담기도 했다. 학자나 시민운동가의 말과 공직자의 말은 파장이 다르다.
어쨌든 김위원장의 신속한 사과로 논쟁은 일단락됐다. 다행이다. 김위원장이 한 기업인의 인격을 모독하고 글로벌 기업 자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기업인들의 사회적 책무나 국가 사회를 위한 기여, 비전제시 등을 강조하려다 나온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나 위법 탈법은 법으로 다스리면 될 일이지 교수가 학생 대하듯 가르치고 훈계하는 모습은 볼성 사납다. 특히 이 정부 들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시민운동 출신 공직자들의 반기업 정서와 빈부에 관한 과격한 성향이 여과 없이 표출된다면 국민과의 괴리감,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갈파해 충격을 줬던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의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느 시대건, 어느 사안에 대해서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또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사회가 건전하다는 증거다. 이번 ‘김위원장 발 갑을논쟁’을 보면서 박근혜정권의 몰락은 소통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새 정부 관계자들이 벌써부터 잊어가고 있지 않나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무슨 정책에 해당 경제단체가 이의를 제기하자 즉각 대통령이 나서서 ‘원인 제공자가 무슨 반발이냐’는 식으로 입에 재갈을 물려버리면 곤란하다. 지금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갖가지 정책에 입 벙긋도 못하고 납작 엎드린 재계, 일방 통행식 행정, 윽박지르는 듯한 관료들의 언행은 빨리 시정되어야 문재인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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