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편집인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큰 길을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임대’라는 글자를 창문에 큼지막하게 붙여놓은 점포가 쉽게 눈에 띈다. 건물을 새로 지어 세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는 곳도 있겠지만 식당이나 찻집 치킨집 등 소규모 자영업을 하던 업주들이 장사가 안 돼 점포를 뺀 자리가 대부분이다.
자영업자들만이 아니다. 지난 8월 살충제 달걀 파동이 불거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양계농가는 물론 다른 축산농가까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목 중 대목이라는 추석이 다가오지만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후 선물용 농수산물 거래가 눈에 띄게 줄어 시장상인과 농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요즘 경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발하러 동네 목욕탕에 가면 얼굴을 알아본 이발사가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 빈 점포가 늘어가는 속사정 등 동네 소식을 미주알고주알 전하면서 “정말 경기가 어렵다. IMF는 저리가라 수준”이라고 걱정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 가는 걸 미루는 형편이니 목욕탕과 이발소는 어련하겠느냐는 대목에서는 한숨까지 내쉰다.
경기가 어려워진 게 새 정부 들어서 새삼 불거진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북한 핵실험과 사드(THAAD)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에 8·2부동산 대책 및 후속조치 등으로 더욱 그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대기업의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은 착시현상이지만 지표상으로나마 괜찮아 보이던 경제동향이 2분기 이후 꺾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얼마 전 발표한 경제동향 자료에서 비슷한 우려를 지적했다. 음식·숙박업 생산은 7월 -4.3%을 보였고 이후 쏟아지는 악재에 휘둘려 더욱 위축되는 추세다. 음식·숙박업 생산 추이가 자영업자들의 형편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볼 때 그 어려움을 짐작하고도 남겠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는 주요 정책들은 경제를 살리는데 중점을 두기보다 증세와 규제에 집중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추경예산을 편성했지만 공무원 수만 늘린다는 논란을 키웠을 뿐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오히려 8·2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건설업 부진이 겹쳐 청년실업이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인 9.4%까지 올라갔다. 고소득자의 소득세와 대기업 법인세율을 올린 세제개편도 경기에 미칠 득실을 면밀히 따지기보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분위기를 틈타 전격 밀어붙인 ‘표적증세’였다.
8·2부동산 대책은 저금리를 틈타 투기수요까지 몰리는 시장여건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치로 일단 평가된다. 시장에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투기과열지구 지정과 주택대출규제 강화, 다주택자 양도세강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데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세금을 퍼부어 시장을 압박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투기 잡고 값을 끌어내리는 일만 목표로 삼는 다면 이를 못 할 정부나 장관은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부동산을 주적으로 삼아 무조건 틀어막는 게 아니라 거래와 가격을 안정시켜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 공급 측면에서 대책을 보완하고 다주택자들이 빠져나갈 여지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잠실 단지 등 일부 지역에서 아파트 값 상승 조짐이 다시 나타나면 지역특성을 고려한 부분적인 추가 조치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 후속 대책은 시장동향과 무관하게 규제에 규제를 더하고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시사하는 등 강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당대표까지 대열에 뛰어들어 국회 대표연설에서 보유세 인상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선창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현재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나 그 소신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미사일을 마구 쏘아대도 대화에 매달리며 인내심을 십분 발휘해온 정부 여당이 안으로 주요 경제정책에서는 유난히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는 본때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적폐청산을 외치며 선거운동 하듯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경기가 급격하게 쏠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용해야 한다. 빈부격차를 염두에 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표적증세’가 당장은 정책의 추진력을 높여줄 수 있겠지만 큰 틀의 경제운용에서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급격한 경기위축과 일자리 감소를 불러와 국민에게 부담을 주고 나라 살림을 어렵게 만들 위험이 크다. 본때 보여 군기 잡는다고 경기가 나아질까? 오히려 심리적 위축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김성기 편집인 약력
△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논설실장
△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2015~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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