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시골에 내려 온지 얼마 안 되어 서울에 일이 있어 가게 되었다. 일이란 남편의 국제회의 참석인데 참석자들의 부인을 대접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회의의 이름은 APAP FORUM인데 필리핀인 부인들과 대화하는 와중에 그들이 이 모임을 아프아프 포럼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퍼시픽 어그리칼쳐 폴리시 포럼이다. 태평양 연안 국가 농업 정책 연구단체라고 하면 설명이 되겠다.
남편이 FAO 필리핀 대표로 있던 16년 전부터 필리핀과 우리 나라 주변 국가에서 농업직을 맡고 있는 관리나 학자들이 함께 모여 만든 단체다. 현재는 아시아에서 14개국이 참가하고 있고 아프리카 30개국이 참가하는 다른 모임과도 연관이 되어 있어 조만간 참가국은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어려움에 처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진지한 활로 모색이란 주제는 세계 모든 곳에서 고민해야 하는 공통점인가 보다. 이런 민간 국제 단체와 관계를 맺다 보면 상호 간에 느끼는 관심사에 공감을 느끼고 서로가 배운다는 차원을 넘어 개인의 생각과 신념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16년 째 초가을에 열리는 이 번 회의에 외국인 부인들은 전부 세 사람이 참석했다. 두 명의 필리핀 부인과 한 명의 인도네시아 부인이다. 그 외는 전부 혼자 참석했다. 한국에서 부인 체재 비용까지 부담할 수 없어 개인의 비용으로 오는 데 모두들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 때문이다. 하지만 이틀간 관광비용은 한국 측이 부담한다. 주최 측에서 보내준 여직원 한사람과 나까지 한국인은 두 명. 합해 다섯 명이 보내는 일정이다.
현재의 서울을 가장 잘 보여주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쇼핑도 할 수 있는 코스는 어떤 것일까? 고민 끝에 고속터미널 상가와 인사동, 남산 타워는 첫 날, 다음 날은 롯데 타워와 명동에 가기로 했다. 터미널 상가에서 손님들은 옷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쁘고 저렴한데도. 하지만 화장품은 많이 샀다. 인사동에 가서 아기자기한 한정식을 먹은 것은 성공. 점심 먹은 후에 친지들 선물을 사기엔 역시 인사동이 좋았던 것 같다.
3시경 남산 타워로 자리를 옮겼다. 케이블카를 타고 나서 자물쇠의 추억을 둘러보는 것도 만족해했다. 남산타워 앞 광장에서 조선시대 무사들이 군무를 펼치는 쇼를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에게 뜻밖의 선물이었다. 타워를 오르고 난 후 찻집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하고 이야기하는 짬을 가졌다. 이 휴식이 무엇보다 인상 깊은 소통의 시간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부인은 한국이 처음이란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한국 가수들 이름을 알 정도로 이곳을 좋아해 주는 그녀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필리핀 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의 말이 자기들 말과 똑같은 것이 있다고 신기해했다. 예컨대 –싸이양!- 맛난 케잌을 먹다가 한 조각 떨어뜨리면 –싸이양!-하며 그걸 주어먹는다는 것이다. 우리 말의 –아까워!-와 같은 말인가 보다. 인도네시아 말의 –싸이양-이 필리핀의 –싸이양-과 같은 뜻이란 것이다. 나는 이웃의 두 나라 말이 같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국 여자들도 꼭같이 쓰는 말 –아까워!-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세계의 누구와도 같다는 사실이 또한 신통했다.
그녀들은 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영어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 자신의 모국어를 가지고 있지만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 기쁘다고. 한국의 찻집 어느 구석에서 세계의 여러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남에게 이해시키고 있다니....멋진 일이라고 생각됐다. 다른 언어의 친구들도 서로 소통하려 하는데 내가 영천에 가서 경상도 사투리일지라도 우리말을 하는 상대방과 소통할 수 없다면 말이 안 되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오늘 서울의 남산타워에서 세계가 내게 친구로 왔다.
안녕, 내 친구!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키워드

#귀촌 #조은경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