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투데이코리아 회장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나 원초적인 사회인 가정을 이룹니다. 이 가정이 모여 마을이 되고, 규모나 범위를 차츰 확대함에 따라 작은 지역사회 또는 소집단으로부터 나라에, 더욱 나아가서 세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들은 규모가 크든 작든 ‘발전하는 사회’, ‘안정된 사회’, ‘공평한 사회’,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 ‘풍요하고 윤택한 복지사회’, ‘아름답고 정다운 대동(大同)사회’라는 이른바 축복받은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숭고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으로 개국하신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 이래 모든 백성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이러한 ‘바람직한 사회상’들은 우선순위에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범세계적인 보편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추구하는 수단과 방법은 종족과 문화를 달리하는 동서양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양적 사고방식은 ‘대립과 경쟁’의 원리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해서 동양적 사고의 발상이라 할 수 있는 ‘조화와 역할배분’의 원리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운 듯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통일’은 반드시 ‘투쟁에서 승리’해야만 이룰 수 있고, ‘민주주의’는 무조건 ‘피로써 쟁취해야만 한다.’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을 용납하지 않는 서양식 논리의 제약이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로 대표되는 서양의 지성이 보여준 ‘투쟁적 허무주의’와 동양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深淵)’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립과 경쟁’ 그 자체가 어떤 ‘조화된 일체(一體)’ 가운데에서 역할 배분된 하나의 기능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데서 동양사상의 깊이를 음미해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일체’를 ‘무(無)’나 ‘공(空)’ 또는 ‘도(道)’나 ‘불(佛)’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사상 중에서 제 마음을 끄는 것은 ‘현실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 즉 ‘해탈(解脫)’ 또는 ‘성도(成道)’를 삶의 목표로 하는 소승적(小乘的) 사고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인 대승적(大乘的) 사고에 주목합니다. 그 하나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바탕 위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함을 수신(修身)의 강령으로 삼아 요순시대와 같은 이상사회를 향해 올바른 자아(自我)를 집안과 나라와 천하로 차츰 널리 확대 실현하려는 것을 삶과 학문과 행동의 지침으로 하는 유학(儒學), 특히 ‘대학(大學)’의 가르침입니다. 또 하나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 성불(成佛)하기 전에는 자신만이 성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중생의 고뇌를 함께 하면서 극락정토(極樂淨土)의 현세화(現世化)를 위해 기꺼이 몸 바치겠다는 대승불교의 보살행(菩薩行) 정신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상들이 그 발상지인 중국이나 인도에 비해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간단없는 침략과 살육, 압제와 수탈의 현장인 이 땅의 우리 선조들에 의해서 더욱 빛나게 다듬어지고 정성스레 가꾸어져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때로는 화랑도로, 때로는 호국불교의 넋으로, 때로는 꿋꿋한 선비의 기개와 절조로, 때로는 독립자존을 위한 거센 함성과 민족중흥의 대열에 앞장선 열정으로,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바로 ‘성의정심과 보살행’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날 순간의 휴식도 없이 빠르게 변하는 국제정세의 와중에서 우리의 안전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막중한 부담과 냉혹한 무한경쟁의 세계체제의 압박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굳건히 정립하고 어떠한 외세의 압력에도 자주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의정심과 보살행은 이 엄중한 시점에서도 엄연히 살아있는 우리 사회의 활력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필자 약력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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