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서울에서 영천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영천 행은 하루에 네 번 뿐이다. 오후 3시 40분에 탑승해서 7시 10분에 영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3시간 반 걸렸다. 최근에 상주-영천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전에는 4시간 걸리던 버스 운행시간이 30분 단축된 것이다. 영천 터미널에 내리니 어둑어둑하다. 서편으로 눈을 돌리니 방금 지고 있는 태양의 뒤태가 아스라하다. 끝자락이 조금 눈에 밟혔다가는 바삐 길을 재촉하는 새댁의 치마꼬리처럼 바람결에 사라져버린다. 그러자 거리엔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타향에서 지는 해를 만났다면 마음이 불안하고 쓸쓸했을 것이지만 영천은 여행지가 아니다. 이미 고향이 된 것이고 나는 집에 온 것이다.
터미널에 내린 참에 바로 뒤편에 소재한 음식점에서 유명한 한우육회비빔밥을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편대장 영화 식당-은 영천의 맛집으로 첫손에 꼽힌단다. 소문만 듣다가 드디어 맛을 보게 되었다. 부드럽고 쫄깃한 육회의 맛이 혀에 감기는 동안 뾰족하게 솟았던 혓바늘이 스르르 사라지는 듯 했다. 그 동안 서울서 이사 내려와 짐 정리하고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느라 몸이 피곤한 지도 몰랐다가 서울 다녀오면서야 입안이 퉁퉁 부은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다. 저녁을 함께 맛있게 먹은 8촌 시동생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텃밭이 궁금해져서 얼른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배추가 싹이 났을까? 뚫어 놓은 구멍마다 아주 예쁜 잎이 두 세 개씩 나와 있다. 내가 뿌린 그 작은 씨앗이 드디어 싹을 틔운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 질 정도로 기쁨에 겨워 텃밭 가까이 서서 가만히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것 같이 기쁘다. 남편도 내 옆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시골 출신인 남편은 그 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다. 서울 올라갔다가 내려온 시점이 파종한 때부터 열흘도 채 안 되었는데 어째 저렇게 크게 자랐나 생각하면서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농사는 안 지었어도 보는 눈은 나 같은 도시 출신과는 달랐나 보다. 아침을 먹은 후에 형님 내외분을 만났다. 형님이 남편을 한 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 무어라 얘기한다. 내가 고개를 쫑긋이 하고 그 편을 보자 형수님이 웃으며 말한다.
“에구 결국 실토하시누만, 닷새가 지났어도 소식이 없어 장에서 모종을 사다 다시 심었다우.”
이게 웬 일이람. 내가 심은 씨앗들이 발아가 되지 않고 그냥 땅에 파묻혔다는 말인가? 왈칵 서운함이 몰려온다. 내가 심은 것은 그렇다 치고 형수님이 심은 것도? 내 의아한 눈빛을 눈치 챈 듯 형님이 말한다.
“마사토 한 트럭하고 퇴비 반 트럭 쯤 미리 부었어야 하는데 그랬심더.”
마사토 한 트럭에 30만원, 퇴비 반 트럭에 20만원이란다. 퇴비 열 포대는 정말 암껏?도 아니었네. 그럼 배추씨를 심고 싹이 날만한 땅이 되려면 50평 텃밭에 기본 50만원이 필요하다는 거구나. 기본에 덧붙여 배추씨 값도, 모종 값도, 물주는 노력까지? 그럼 배추 한 통에 얼마가 되어야 하지?
초보 농부의 머릿속에 뱅뱅 빠르게 셈이 돌아간다. 오우, 노우!
이래서 농사가 힘들다는 거네. 이런 내 실망이 안쓰러워 우렁각시처럼 몰래 모종을 사다 심으신 형님 내외의 배려와 깔깔 웃으며 실토하는 명랑한 성품이 나를 다시 기운 나게 한다.
오늘 배추 이랑 사이로 실망과 희망이 교차하며 내게 친구로 왔다.
안녕, 내 친구!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