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과감한 정책궤도 수정, 소통의 신호
최근 빚어진 일련의 두 사건에서 문재인정부의 희망을 읽는다. 기업인과 벌인 논쟁에서 자신의 잘못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김상조공정거래위원장의 처신이 첫 번째 사건. 그리고 문재인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정책 핵심이랄 수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부분적 후퇴’를 천명, 핵심성장정책의 활성화를 지시한 것이 두 번째 사건이다.
이 같은 현상에 필자가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과 선택에 관해 각계의 의견을 과감히 수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보인 사고의 유연성이 돋보였다고 본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과 판단에 독선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비판적 제언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바람직하다. 그들의 자신감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소득주도 성장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집권 후 넉 달이나 지난 이제야 깨달았느냐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신속했다고 본다. 과거 어느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선택을 이처럼 재빨리 수정한 적이 있었던가.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소통부재의 피해를 경험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만 정책의 궤도수정 과정에서 좀 더 겸허한 반성의 모습을 보였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지난 9월26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대통령이 혁신성장을 강조한 후 청와대측의 코멘트는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한 것에 대한 반성으로 혁신성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였다. 자신들의 판단 미숙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반성하기보다 변명하는 모습이어서 궁색해 보였다.
곳곳에서 울린 경고음에 놀란 정부
이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론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우려와 반대가 적지 않았다. 필자도 얼마 전 새해 정부예산안을 분석하는 칼럼에서 ‘미래의 먹거리인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복지 포퓰리즘 성격이 너무 강한 문재인 산타클로스의 선물보따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동연경제부총리는 취임 초부터 핵심성장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이 정부 핵심 경제브레인들에 밀려 ’김동연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김부총리는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 뒤늦게 그의 주장이 빛을 보는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만시지탄이지만 경제정책의 기본 축이 방향을 틀게 된 것은 사실 김부총리나 반대론자들의 주장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 각 부문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도처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3%로 세웠으나 달성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고, 지난 8월의 청년실업률은 9.4%로 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 수혜자여야 할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정책 여파로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저소득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줄거나 축소 조짐이 현저해졌다. 소상공인들은 직원 수를 줄이거나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계속 늘어나던 자영업자 수도 감소세를 보였다.
혁신성장 개념 명확히 하고 속도감있게 추진해야
문재인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을 종합해보면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소득주도형 성장이다.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늘려 성장을 이끌어 낸다는 전략. 이를 위해 최저임금 시급을 1만원까지 올리고, 공적임대주택 연17만가구 공급, 월10만원 아동수당 신설, 노인기초연금 인상 등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을 증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둘째는 일자리 중심 경제. 고용 없는 성장과 사용자 중심의 노동시장 관행을 개선, 일자리 중심으로 예산 세제 정책 금융을 재설계하고, 공무원일자리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중심이다.
셋째는 공정경제. 갑을 문제의 해소를 비롯하여 하도급 가맹점 등 불공정한 경제행위 근절, 골목상권 보호,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을 담고 있다.
넷째는 혁신성장. 문대통령이 지적했듯이 혁신성장정책에 관한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고 4차산업혁명에 대비한 성장방안 마련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 수요를 견인하는 정책이라면 혁신성장은 공급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상기 4가지 전략 중 네 번째 혁신성장정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것들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부작용들이 나타나면서 혁신성장을 크게 강화하기로 한 것이 이번 정책 변화의 핵심이다. 그간 성장전략은 고려되지 않고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위주여서 ‘파이를 키우기보다 오로지 파이를 나누는 데 너무 골몰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따라서 뒷전에 밀려있던 혁신성장정책은 아직도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제 경제부처는 혁신성장의 명확한 개념을 국민에게 알리고,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필자 약력
△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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