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추석 황금연휴에 국민들의 기를 살려주는 뜻밖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9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무려 35%나 증가, 월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세계 경기 회복세, 특히 반도체 경기 활황으로 일부 국내업체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난달 수출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1년 만에 최대를 기록할 줄은 다소 의외였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글로벌 무역보호주의 팽배, 조선업 부진 등으로 평월 수준만 유지해도 댜행이라고 생각됐었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실로 대단했다. 반도체 수출이 작년 9월보다 70% 증가한 것을 비롯해 철강(107.2%), 자동차(57.6%), 석유화학(41.5%) 등 수출 주력 품목 13개 중 10개 품목의 수출이 두자릿수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반도체 독주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무척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를 우리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월별 수출 최대 기록은 경쟁력 향상이 아니라 글로벌 경기 회복이라는 외적 요인에 힘입은 바가 크고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수출시장 다변화 전략이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미국의 허리케인 피해와 중국의 철강 설비 감축 등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비롯해 지난해 불거졌던 내부 악재가 올해는 되풀이되지 않은 ‘기저 효과’, 지난해와는 달리 올 추석이 10월로 늦어진데 따른 조업일수 증가, 추석 연휴에 대비한 기업들의 ‘밀어내기 통관’ 등이 수출 급증에 기여했다.
이유야 어떻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특히 수출입을 모두 반영한 무역수지가 68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간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10월부터 수출 증가율이 둔화돼 4분기에는 큰 폭의 수출 성장세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수출은 여전히 호조를 보이겠지만 석유제품과 철강 등은 유가 상승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난해 4분기에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된 관계로 기저효과가 사라지게 되는데다 긴 추석 연휴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보유자산 축소, 환율 변동성 확대 등도 수출 증가율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1년째 지속되고 있는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또 다른 축인 내수 관련 경제지표에 온통 빨간 불이 켜져 있는데다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매년 줄어들어 수출 위주의 성장이 한계를 보이고 있고 때문이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2015년만 해도 2.7~2.8%의 성장률을 기록할 때 1.0%포인트를 차지했지만 작년에는 0.4%포인트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이 정도 버티고 있는 것은 수출 덕분이다. 앞으로 수출마저 제동이 걸리면 한국경제가 설 땅이 없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8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소비지표인 8월 소매판매는 전달보다 1% 감소했다. 설비투자와 건설수주도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들 경제지표 3개가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1년 만이다. 반도체를 뺀 산업생산 증가율과 제조업 가동률 역시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취업자 증가폭도 4년6개월 만에 최저다.
우리경제는 수출이 잘되면 낙수효과로 내수도 활황을 보였으나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로 변한지 오래다. 그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에 매달려 왔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낙수효과는 사라졌다 하더라도 소득주도 성장의 기반이 되는 국가 재정의 상당부분은 여전히 수출업체들이 담당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최근 “혁신 성장은 우리 새 정부의 성장 전략에서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경제정책 기조를 ‘분배·성장의 균형’ 정책으로 전환하고 나선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8~9월 11.0%였던 서민경제고통지수가 올해 8월에는 14.9%로 높아졌다. 특히 청년경제고통지수는 무려 24.9%까지 치솟아 취업 절벽 등 청년층의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고 있다. 정부는 이제 성장과 분배 정책을 적절히 조율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 등을 통해 점차 저하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체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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