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추석 명절이 지나면 어느 집이나 한 차례 홍역을 치르게 된다. 핑계는 이것저것 있건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명절 노동에 관한 불만 때문인 경우가 많다. 노동이라니? 우리들의 기쁜 추석, 즐거운 명절에 한 일들이 노동으로 폄하되다니?
명절이 아니더라도 주부들은 매일 세끼 식사 준비와 설거지, 청소와 세탁 등으로 노동 강도의 위험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명절이 오면 그 강도는 최고도를 달리게 된다. 과외의 노동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김치나 식혜 등 명절에 쓸 음식 미리 만들기, 명절맞이 대청소, 제사 음식 준비하기, 주위 친지 분들에게 줄 선물 사기. 그러다보면 이미 명절 전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 채 명절을 맞게 된다. 그러니 제사 때는 어찌어찌 지나간다 해도 설거지 때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무슨 말만 해도 터질 태세가 되는 것이다. 이제 많은 가정에서 그런 위험을 알고 미리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세대에서 가사 분담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문제는 부모 세대이다. 주로 외벌이 가정이었던 부모 세대는 가사 노동을 여자 혼자에게 당연한 듯 맡겨 버렸고 어머니이자 부인인 여자들은 온 몸으로 가사 노동의 부담을 져 왔다. 그것은 농촌에서 그대로 이어져 농사 활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가사 노동까지 도맡아 하느라고 뼈골이 휘어졌다. 하지만 이제 현재의 농촌은 부부가 비슷한 강도의 노동을 나누어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남자의 일터가 농촌이라면, 농막을 지어놓고 그 곳에 출근하고 기계를 이용해서 농사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농촌에 살면서 즐겁게 살 수 있으려면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노동 강도를 예측해서 가능한 한 위험 수위를 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노동을 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든가 일정량의 노동을 여러 번에 나눠 하든가 필수적인 노동이 과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농촌 주택은 아무래도 도시의 아파트보다 넓어 걷는 곳도 많다. 그리고 교통이 불편해 도와줄 일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에 배추밭에 비료를 뿌리게 되었다. 형님이 복합비료를 약간 두고 갔다. 뿌리 옆 비닐 부분을 칼로 구멍을 내고 약간씩 뿌리면 된다는 것이다. 이랑마다 배추 포기가 스무 포기 정도인데 여섯 이랑이니........ 하나씩 칼로 구멍을 내고 뿌리고 또 뿌리고... 처음엔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아서 그 작업을 하다가 나중엔 엉거주춤 앉은뱅이가 되어 비료 자리를 만들고 뿌렸다. 그리고 계산을 잘 못 해서 여섯 이랑 배추에 심을 비료를 네 이랑 만에 몽땅 다 소비하고 말았다. 아! 그 일은 처음 해 보는 것이라 생소했고 지루하기도 했고 은근 힘들어서 놀라기도 했다.
아! 이게 농사구나. 똑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이. 지금은 기계화가 많이 진척되어 넓은 지역의 농사를 한두 사람이 짓기도 하지만........ 옛날엔 얼마나 힘들었을까? 비료가 있었나? 친환경 농약이 있었나? 척박한 땅에 겨우 겨우 농산물이 자라면 벌레가 먹고 병이 들고........
도시 사람들이 농사를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지루한 동일 노동을 끊임없이 해야 하니까. 하지만 주부가 지루한 가사 노동을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내하고 보냈듯이 지루한 농사 작업을 농촌에 대한 사랑으로 인내하고 지내야 할 것 같다.
하느님, 저는 귀촌 주부입니다. 농사 노동이든 가사 노동이든 제가 견딜 만큼씩만 감당하게 해 주소서. 그래서 언제나 농촌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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