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의 경제관이 차례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건설경제, 관치경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선 대폭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원장 손석춘)이 지난달 26일 기자들에게 “이명박 경제는 70년대식의 국가주도 개발주의, 성장주의 경제보다는 차라리 노무현식의 시장주의, 민영화, 개방화, 금융화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망보고서를 공개한 것이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신자유주의가 강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극심화될 것이라는 시민단체, 노동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 '정중동' 상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를 추구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어판은 마련하려는 태도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당선인의 향후 5년은 기업활동을 극대화하고 관치경제의 폐단은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일단 16일 정부조직개편안 등에서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다. 대규모 사업 추진이나 정책 추진 역시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태도다.

한 마디로 이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거버넌스(정부는 집행 등은 민간에 맡기고 방향지시만 한다는 개념. 행정학에서는 가장 정부기능을 축소한 형태로 본다)'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 거버넌스는 “민간이 돈을 싸들고 투자판에 뛰어들게끔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본래적 의미의 거버넌스와는 다르다.

◆핵심키워드는 '민자유치'와 '효율성'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들을 보면 '대규모 국채 발행'이나 '추경예산 투입' 등 국가예산으로 일을 벌이겠다는 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민자유치'와 '자발적 참여'라는 새 개념이 경제 아이디어들의 전반을 꿰뚫고 있다. '민간 사업자가 탐을 낼 만한 정책을 펼치면 알아서 돈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온다'는 경제의 ABC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 CEO 생활을 하면 체득한 법칙이 철저히 관철되고 있다.

우선 이런 철칙에 입각해 이명박 당선인의 분신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신년초부터 일을 냈다. 강승규 인수위 부대변인이 5대 건설사 간담회 중에 대운하 문제에 대해 밝히면서, 5대 건설사가 콘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자발적으로' 대형국책공사를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 나중에 잘못된 발언이었다느니 언론플레이 아니냐느니 하는 지적이 나오기는 했으나, 5대 건설사 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사들의 관심까지 이끌어 내는 효과를 거둬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은 이후 '민자 유치로 경부 운하 뿐만 아니라 각 지역 운하까지 건설한다'는 세부 안을 검토하는 데 귀중하게 쓰여졌음은 물론이다.

이어서 인수위는 주택 가격을 잡기 위해 인위적 '통화정책'을 쓰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당국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인 '관치 정책의 유혹'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인수위는 대신 17일 다른 꾀를 선보였다. 민간 투자를 끌어내 서민들이 주택을 싸게 살 방법을 선보인 것이다. 이름하여, '지분형 주택분양제도'다. 주택을 실제로 구입할 사람과 투자만 할 사람에게 주택 지분을 '나눠 분양'하는 것으로, 실소유주와 투자자가 '주식회사'와 비슷하게 지분을 나눠 갖는 것이다. 대신 주택 가격이 오르면 차액이 생기니 이를 나눠갖는다는 '기대이익'으로 민간투자자를 끌어모은다는 것이다.

인수위 이동관 대변인은 17일 “돈이 없어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는 서민들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분형 주택분양제도를 올 하반기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59.4㎡(18평) 이하의 주택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할 계획이다.

최재덕 인수위 경제분과 위원은 “2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이 제도를 활용하면 실소유자는 분양가의 51%인 1억200만원만 투자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다 국민주택기금에서 낮은 이자로 5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어 분양가의 4분의 1인 5200만원으로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9800만원은 지분 투자자가 내게 된다. 이전의 반값 아파트보다 더 효율적인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휴대전화 요금이 가정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인수위는 요금을 줄이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에는 요금 인하를 추진했으나 통신업체들의 난색 표명이 있어 방향을 틀었다. 누진제 적용이 그 대안이다. 초기 비용을 낮추는 대신 많이 쓰면 요금이 오르는 제도로, 인수위 측은 통신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민간에 대한 규제나 행정지도 없이도 효과를 노린 것이다.

기름값 문제에 대해서도 민간기업이나 세수확보에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도 가격 인하 효과를 거둬 서민층에 효과를 나눠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일률적 유류세 인하보다는 바우처(Voucher) 제도 도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반발시 어려움 봉착 가능성도

이런 정책 추진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런 호의적 여론 속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경제정책들이 의외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첫째, 경제정책들의 기본 구상은 환영하나 실제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진요금제를 통한 통신요금 인하 방식은 통신업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서울YMCA가 “지난해 도입된 망내할인과 문자요금 인하 사례를 볼때 통신비 절감과 기본료 추가 부담이 상쇄돼 사업자 입장에서 생색만 내고 실질 요금인하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반발이 만만찮다. 결국 정부의 반강제적 유도가 불가피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여타 정부와 차별성이 없어진다. 이른바 '과거로의 회귀'다.

바우처 제도 등을 통한 유류 가격 인하도 여러 가지 난점에 부딪혀 다른 방법들도 병행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가 그간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여론에 직면하면서도 못 고친 것을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해석도 있다.

아울러 시장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시장성, 즉 이윤발생가능성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 여타 정부들의 정책과 달리 막바로 정책이 사장되는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게 문제다.예를 들어 이번 지분형 주택 분양제도의 경우 성공할 경우 기존 정부가 내놓은 어떤 주택 정책보다 효과적인 정책이 될 것이지만, 문제는 이 정책이 민간 투자자들의 투자관심을 얼마나 끌어낼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일부 대도시나 가격이 오를 것이 기대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투자 유발이 기대되나,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에 가격투자를 할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나설 것인지 벌써부터 부정적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결국 시장의 기대를 유발하고 이런 '당근' 효과로 민간을 이끌겠다는 발상은 좋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 당선인이 과연 관료주의의 쉬운 길을 포기하고 새 정책 기조를 제대로 펼 수 있을지, 첫 시험대가 될 이번 1/4 분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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