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투데이코리아 회장

10월 10일은 10자가 겹쳐서 쌍십절이라고 합니다. 중화민국의 국경일이지요. 이날은 1911년 10월 10일 중국 신해혁명의 발단이 된 우창(武昌) 봉기가 일어났던 날입니다. 신해혁명은 한족이 주도해서 만주족의 청나라를 폐하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현대 중국의 시발점이라고 봅니다. 현대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孫文)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하지요. 쑨원은 1866년 광둥(廣東)성 샹산(香山)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하와이에 가서 자리 잡고 있었던 큰형의 도움으로 10대에 하와이에 유학을 했고 후에 홍콩 서양의학원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쑨원 선생이 중국혁명의 큰 뜻을 품고 비밀결사 흥중회(興中會)를 결성한 것은 1894년 하와이에서였습니다. 1905년 광둥에서 무장봉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일본 도쿄에서 청조타도의 혁명세력을 규합하여 중국혁명동맹회를 조직하였습니다. 1908년 안후이 봉기, 1910년 2월 광둥 봉기, 1911년 황화강 72열사 봉기 등 비록 실패하였지만 중국 각처에서 봉기가 연속되었고 마침내 10월 10일 우창에서 일어난 봉기가 처음으로 성공해서 후베이(湖北) 혁명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어서 17개성에 혁명정부가 등장한 것을 보고 그해 12월 쑨원이 귀국하여 1912년 1월 1일 난징(南京)에서 중화민국 건국을 선포하고 임시정부의 초대 대총통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후 위안스카이(元世凱)의 반동과 북벌 등 우여곡절 끝에 중국혁명의 완성과 통일된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건국을 바로 눈앞에 둔 채 쑨원 선생이 1925년 3월 12일 베이징에서 암으로 서거하였습니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일찍이 난징에 묻히고 싶다고 했던 그의 뜻을 받들어 ‘중산릉’을 난징에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1926년 그의 1주기에 착공, 3년간의 역사 끝에 1929년 6월 1일 베이징에서 운구하여 중국 국민당의 이름으로 장례를 거행하였습니다. 중화민족의 영웅인 선생의 무덤에 그의 호를 따긴 했지만 옛날 황제의 무덤인 ‘릉’의 칭호를 붙인 것이 조금 어색하지만 중국 인민의 절대적인 존경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제가 10여 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 입구의 대문에 해당하는 패방(牌坊) 위에 그의 평생 신조인 ‘박애(博愛)’가 첫눈에 들어왔습니다. 청천백일(靑天白日)을 상징하여 푸른 기와, 흰 돌로 된 능문(陵門)의 중앙에 그의 또 하나의 신조인 ‘천하위공(天下爲公)’이 그의 친필로 새겨져 있었고, 392개의 돌계단 위에 있는 본 건물인 제당(祭堂) 입구 세 개의 문 위에는 그가 주창한 삼민주의의 ‘민생(民生)’, ‘민권(民權)’, ‘민족(民族)’이 전서체로 나란히 쓰여 있었습니다. 제당 중앙에 흰 대리석의 전신 좌상이 있고 뒤쪽에 관이 안치된 묘실이 있는데 제당의 석상을 둘러싼 사방 벽에는 검은 대리석에 그의 유언인 ‘총리유촉(總理遺囑)’이 후한민(胡漢民)의 글씨로, 그의 필생의 저작인 ‘건국대강(建國大綱)’ 전문이 그의 친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1924년에 쓰여 진 이 ‘건국대강’은 짧은 글이지만 삼민주의에 바탕을 두고 국민혁명과 건국의 순서 및 그 방략에 대해 함축적으로 기술한 것으로서 그의 사상과 생애를 총결하는 핵심적 저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제정선언과 총 25개조의 본문으로 되어 있는데 첫머리가 바로 삼민주의의 최우선인 민생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삼민주의는 민족, 민권, 민생의 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건국대강에서는 거꾸로 민생, 민권, 민족 순으로 되어 있어 대단히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국민혁명과 건국의 우선순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민생이 민권이나 민족보다 우선이고 또한 민생과 민권이 민족보다 우선한다고 한 것이 저에게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요즈음도 이념 논쟁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인데 중국 민족주의의 대표적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쑨원 선생이 일찍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민생의 네 가지 필수요소로서 식(食), 의(衣), 주(住)와 행(行) 즉 교통·통신을 꼽고 있는 점도 탁월했습니다. 의·식·주의 순서가 아니라 ‘식’이 당연히 최우선이라는 것과 ‘행’의 중요성을 그 못지않게 강조한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식’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해 농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나 ‘의’ 분야에서도 그 원료로서 전통적인 농산업의 하나인 ‘직조(織造)’의 발전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 등이 눈에 크게 띄었습니다. 민권 분야에서는 정치제도의 발전단계를 군정(軍政), 훈정(訓政), 헌정(憲政)기로 나누어 거론하고 있는 점, 입법원, 행정원, 사법원의 3권 분립에 감찰원과 고시원을 더하여 5원제로 하고 있는 점, 중앙과 성(省)의 관계나 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 등을 감안하여 지방자치의 발전 방향과 단계를 제시하고 있는 점 등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쌍십절을 맞아 쑨원 선생의 건국대강을 다시 한 번 되씹어봅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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