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으로 특검이 한창인 요즘 특검팀이 삼성 계열사 임원들에 대해 조사를 위해 출석을 요구했으나 업무를 핑계로 불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로 인해 특검팀이 매우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인 동행명령제가 '이명박 특검법'을 다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삼성특검법' 역시 사실상 활용하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미 특검을 의식해 웬만한 기밀 서류도 다 없앤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모두가 쉬어야 할 일요일에도 직원들을 전원 출근시켜 기업이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회장과 주요 임직원의 이름이 담긴 문서들을 다 없애버렸겠는가?

이번 특검의 방향을 보면서 '이번엔 어디까지 갈까?'하는 생각이다. 과거 삼성이나 현대의 비리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조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명백히 죄를 지은 관계자들이 그 죗값을 제대로 치르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세 살짜리 꼬마가 보아도 '유전무죄(有錢無罪)'이다. 그나마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비록 나중에 보석으로 빠져나왔지만) 며칠이나마 감옥 체험(?)을 한 것에 비해 삼성 이건희 회장은 여태껏 검찰 조사 한 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건희 회장을 소환시키는 것보다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을 소환시키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그나마 이번 특검에서는 조금의 희망이 보인다. 주요 임직원들의 집무실은 물론, 삼성 직원조차 함부로 출입하지 못한다는 전략기획실,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자택과 삼성 경영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승지원까지 압수수색을 단행했다는 데에 특검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단, 이것이 조금만 일찍 시행됐더라면 몇 건의 증거물이라도 더 건질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지난날 삼성의 행보로 보나, 이번 특검의 형태를 보나 이미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 돼 버렸음은 인정하지 않으려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건희 회장의 위상은 이미 대통령을 능가하는 수준이 돼버렸고, 김용철 변호사 폭로에서 볼 수 있듯이 온 나라의 모든 조직이 삼성과 연관돼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김 변호사 폭로 당시 같은 법조인들로서 감싸주고 지원해 주어야 할 변협은 김 변호사를 징계한다느니 하며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이 무슨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무조건 드러내고, 부풀리고, 깎아내리기 바쁜 언론들이 정작 삼성의 잘못에 대해서는 (물론 올바르게 지적하는 언론들도 있다) 대외 신인도가 어쩌니,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이 어쩌니 하며 삼성이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제 발로 나서서 감싸주기에 급급하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당장 눈앞에 있는 국가적 이익에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으로 보여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날 삼성의 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산업화 시절 우리나라 산업의 한 축으로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대외 신인도를 높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삼성이 만든 휴대폰은 초고가 명품에 속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故이병철·이건희 두 회장이 이룩한 것인가? 아니면 이 회장 주변의 몇몇 수뇌부들이 만든 것인가? 삼성이 이러한 위상을 가지기까지는 밤을 새워가면서 업무에 몰두한 수많은 삼성 직원들의 땀과 노력, 또한 그러한 삼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물건 하나라도 더 사 준 국민들의 응원이 있었다. 삼성 경영진도 이 사실은 결코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삼성은 국민의 기업이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고 그것이 '삼성'이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간 것이다. 그랬던 삼성이 지금 너무나도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 삼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치졸하고 창피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세계적 대기업인 Microsoft의 빌게이츠 회장이 비밀 금고를 만들어 비자금을 숨기고, 그것이 들통 나 관련 문서를 없애고, 대책회의를 연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언제까지 도망 다닐 것인가?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특검의 진행으로 더 많은 치부가 들통 나기 이전에 이건희 회장 이하 관련자들이 스스로 조사에 응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인하고, 책임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삼성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고, 세계 속에서 삼성의 위상을 오래도록 지키는 일이다. 당장의 눈앞에 이익에 어두워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하다면 그것을 위해 은밀한 곳에서 누군가가 억울하게 희생돼야 할 것이고, 삼성은 또다시 제2·제3의 김용철 변호사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안에서 부패한 것이 지금보다 더 확연하게 밖으로 드러나 그렇게 자랑하던 대외 신인도조차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특검을 계기로 삼성이 국민기업으로, 깨끗하고, 세계 속에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김원중/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