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를 떠나 양현종·장원준 두 투수가 쓴 각본 없는 드라마

▲ 승리의 순간 양현종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왼손을 높이 처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야구에서 투수의 역할은 막중하다는 의미다.


타고투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환경에서, 그것도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한국시리즈에서 명품 투수전이 펼쳐졌다.


26일 광주-기아타이거즈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이하 KS) 2차전에서 최종 스코어 1대 0으로 기타 타이거즈가 두산 베어스에 신승을 거뒀다. 점수는 단 1점이 났지만 긴장감은 점수가 많이 난 그 어떤 경기보다 훨씬 컸다.


승리팀 기아의 양현종은 9회 동안 총 122개의 공을 뿌리며 11K, 2볼넷,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두산의 선발투수 장원준도 7이닝동안 117개 투구수,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다.


이 경기를 직접 해설한 이용철 해설위원은 “지금까지 제가 본 모든 경기들 중에 가장 최고의 투수전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막강했던 두산 타선 양현종의 기세에 완벽 봉쇄당해


▲ 승리 후 김기태 감독과 감격의 포옹.

두산은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1, 2, 3, 4차전에서 각각 5점, 17점, 14점, 14점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타격을 보여줬다. NC의 투수진이 약했다고는 하지만 4경기 50득점은 단순히 투수가 약해서 낼 수 있는 기록도 아니다.


KS 1차전에서도 김재환과 오재일의 백투백 홈런으로 단숨에 5점을 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두산이 기아에 5대 3 승리를 거뒀다.


2차전에서는 이렇듯 막강한 두산의 타선이 양현종의 구위에 밀려 산발 4안타 무득점에 그쳤다. 그러니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장원준도 자신만의 야구로 대단한 피칭을 했다. 정확한 제구력과 주무 기인 체인지업으로 기아 타자들을 농락했다. 여기에 현역 최고의 포수로 모두가 인정하는 양의지의 리드가 더해져 기아 타자들은 타이밍 싸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과적으로 기아는 타점이 아닌 수비 선택으로 결승점을 뽑으며 어렵게 승리를 따냈다.


기아 타격 침체? 문제될 것 없을 듯...


이를 두고 기아의 타격 능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타선의 응집력이 없어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장원준의 빼어난 투구를 감안하고 보면 3차전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도 있었다.


안타성 타구가 번번이 호수비에 막히거나 야수 정면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김주찬, 나지완, 김선빈의 타구가 그랬다. 버나디나는 충분히 제 몫을 해줬고 이명기도 빠른 발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최형우는 오랜만에 장타(2루타)를 날렸다. 만약 그 다음 타석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다만 타석에서의 집중력과 배트 중앙에 공을 맞추는 정확성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3차전 두산 선발은 보우덴이다. 기아 타자들의 타격이 되살아 날 가능성이 크지만 야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가장 짜릿했던 장면 셋


#1


▲ 8회 초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는 양현종.


양현종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투수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지 못하면 심리적인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이날 경기도 기아 타자들은 9회가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점수를 뽑지 못했다.


오히려 양현종은 8회 초 투구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길에 양팔을 벌려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에이스의 품격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장면이었다.


#2


위기는 언제나 있는 법. 양현종의 위기는 6회에 찾아왔다. 1아웃 이후 민병헌이 2루타를 치고 나갔다. 오재원을 삼진으로 잡으며 2아웃을 만들었지만 다음 타자가 리그 타격 2위 박건우와 한 방이 있는 김재환이었다.


이대진 투수 코치가 위기를 간파하고 마운드를 방문해 양현종을 다독이고 내려갔다. 박건우는 양현종이 이전 타석에서 2번이나 삼진아웃으로 돌려 세웠던 타자다. 그러나 주자가 2루에 있고 1점만 내줘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박건우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결코 아니었다.


어려운 승부 끝에 박건우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김재환 타석. 플레이오프 4개의 홈런과 바로 지난 경기에서도 홈련을 기록했던 김재환이다. 조심스러운 투구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외로 승부는 일찍 갈렸다.


4구째 148km 빠른 공으로 3진을 잡아낸 것. 스스로도 위기라고 생각했던 양현종은 김재환을 아웃시키고 주먹을 불끈 쥐는 제스처를 하기도 했다.


#3




이번 경기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아마도 9회초 2아웃 이후 주자 2루 상황에서 양의지와 승부였다. 양의지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면서 거의 모든 코스의 공을 커트해 파울로 만들었다. 11구째 승부구는 148km짜리 빠른공이었다. 약간 높게 재구된 공은 양의지가 휘두른 배트의 위를 지나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명품 투수전을 완성한 강속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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