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별장이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별장을 직접 가지는 것 보다 좋다”
이 속담이 나에게 해당되는 걸까? 내 친구들이 영천에 내려오기로 결정한 것은 내 시골집이 별장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총원 21명의 여고 동창생들이 한날한시에 친구의 시골집을 방문했으니 말이다. 그 날 영천의 버스 터미널에 캐리어를 밀고 끌면서 내리는 한 부대의 아주머니(? 아마 할머니?)들을 보고 터미널 관계자는 영천 신문에 나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 나에게도 영광이고 경사였다. 여행이 진정 행복한 것은 준비할 때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에게도 걱정은 친구들이 막상 영천 터미널에 내릴 때 까지였다. 친구들을 끌어안고 반가워하면서 고민은 저만치 사라져 버렸다.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서로 겹쳐서라도 너의 집에서 잘 테야.’라고 친구들은 이미 말했다. 징헌 것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가끔씩 만나는 동창생들이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10년 동안이나 같이 뒹굴던 친구들이다. 여고를 졸업한 뒤 40년, 회갑연에서 만나 무용단을 결성한 후 자칭 타칭 ‘까투리 무용단’이란 이름을 얻었다. 무용을 연습해서 대중 앞에 첫 공연을 나간 곡이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라는 ‘까투리 타령’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수없이 많은 공연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10년 경력의 아마추어 무용단의 단원들인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의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누구는 성질이 어떻고, 버릇이 어떻고, 모두들 환하다. 마음이 푸근해 친구들 어려움을 남 먼저 알아주고, 청소나 뒷정리는 앞장 서 먼저 하고 꽁한 친구 마음 풀어주기까지 하는 친구에, 오기만 하면 모임에 활기가 돌게 하는 친구도 있다. 처음엔 속상할 일도 있었고 그래서 아웅다웅 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인정하고 지나간다. 친구가 나이 들면서 변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성질이 고약한 친구가 없는 데다 여행까지 같이 다닌 다음부터는 더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게 됐다.
70된 친구들이지만 잘 먹고 잘 놀 줄 안다. 다행히 회비도 든든하게 적립해 두었으니 이 참에 즐기자꾸나. 슈퍼에 들러 바비큐에 쓸 삼겹살도 사고 새우며 소시지도 샀다. 와인도 여러 병 준비했다. 설거지 안 할 수 있게 이번만 쓸 일회용 그릇들도 장만했다. 남편은 가마솥에 직접 국을 끓여 아내 친구들을 대접하고 싶다던 바램대로 맛있는 국을 끓여줬다.
그런 잔치가 다시없었다. 친구들은 정자에 둘러앉아 10월의 마지막 날을 기리며 노래를 불렀고 춤도 췄다. 아껴 왔던 이야기도 하고 화투놀이에 천원짜리도 오갔다. 고택과 무궁화하우스에 친구들이 잠자리를 깔았다. 겹쳐서 자겠다고 하던 친구들 중 여덟 명이 자원해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모텔로 갔다. 고마웠다. 덕분에 스물 한 명이 모두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고택의 네 군데 잠자리에 두 명씩, 무궁화 하우스에서 다섯 명이 잤다. 대단하다. 우리 집에서 열세 명을 숙박시켰으니. 당분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때 찍은 사진을 지금 다시 보면 사진마다 열 명씩 스무 명씩 가득하다. 누가 보면 수학 여행 온 줄 알겠다. 활짝 웃는 얼굴들 위로 가을의 짙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초록으로 풍성한 배추밭도 보인다. 영천의 맑은 산수가 사진 곳곳이 배어 있다.
삐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친구들이 고맙다. 나이 들면 별 것 아닌 일에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자취를 감춘다. 그래 봐야 자신에게 이득 되는 것이 별 없을 텐데도.
그러므로 지금도 건재하는 모든 모임에 존경을 바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우정에 대하여 건배!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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